28일 공개된 2005학년도 수능개편안은 학생의 특기적성을 존중해 진로에 관련있는 과목을 선택해 깊이 있게 공부하는 내용이 핵심으로 새로 도입되는 7차 교육과정의 철학을 잘 살린 이상적인 방안이다.

그러나 학생 개개인의 선택을 뒷받침하는 7차 교육과정이 고교에 뿌리를 내리려면 한참 멀었고, 우리 입시 풍토상 학생들이 일지 감치부터 수능에 필요없는 과목은 포기하고 시험과목만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사설학원으로 몰리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아울러 고교 1학년 말께부터 진로를 정해 선택과목을 공부하는 것은 막판 `눈치작전"에 익숙한 우리 학생, 학부모에게는 아직까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어 `만일"을 대비해 대부분의 과목을 두루 공부할 경우에는 수험부담이 오히려 늘어난다.

또 수험생 선택과목수가 급격하게 늘어남에 따라 선택과목별로 출제하고 시험을 치르도록 하는 시험관리에도 엄청난 부담이 뒤따르는 등 남은 3년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사설학원 의존도 높아진다 = 대학에서 요구하는 영역은 추후 확정되겠지만 대체로 인문계열 학과는 수리탐구와 과학탐구를, 자연계열 학과는 언어탐구와 사회탐구 영역을 요구할 가능성이 낮은 것은 상식적인 판단이다.

이에 따라 인문계열은 사회탐구를, 자연계열은 수리와 과학탐구를 미리부터 집중 공부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사회탐구의 11개 선택과목과 과학탐구의 8개 선택과목, 수리Ⅱ나 미분과적분, 확률과 통계, 이산수학 등은 난이도도 종전보다 높아지므로 이들 과목을 집중공부하기 위해 사설학원 단과반이 기승을 부려 사교육비 부담이 오히려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공부 편식 심해진다 = 선택과목제 도입으로 동반되는 현상으로 고교 1학년때부터 아예 인문계 학과 지원자는 수리와 과학탐구를, 자연계 학과 지원자는 사회탐구나 언어를 아예 포기해버릴 수 있다.

고교 1학년때까지 배우는 국민공통기본교과에 이들 과목이 모두 포함돼 있고 내신에 반영되기는 하지만 수능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에 아무래도 소홀히 하기 쉽다.

이는 고교에서 수업운영에도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수 있고 최소한의 기본 소양이 되는 공부마저 외면할 수 있다.

◇공부부담 오히려 늘 수도 = 학생들이 고교 2학년에 올라 가면서는 진로를 정해 선택과목을 심화학습하도록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고교 2학년때 선뜻 진로를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대학이 채택할 가능성이 높은 언어나 외국어 영역은 물론사회탐구나 과학탐구 등도 상당수 선택과목을 두루 공부해놓는 현상이 생길 수 있다.

같은 계열 학과라도 대학별로 반영하는 영역과 선택과목이 다를 수 있는 것도 문제.

학생들은 복수지원을 위해 결국 이 대학, 저 대학이 요구하는 저마다 다른 영역과 선택과목 공부를 병행해야 된다.

◇시험관리 제대로 될까 = 언어, 외국어 영역 각 1개, 수리영역 `가"형, `나"형,사회탐구의 11개 선택과목, 과학탐구의 8개과목, 직업탐구의 17개과목, 제2외국어.한문의 8개 과목 등 이론상으로 총 48과목용 문제지가 필요하게 된다.

수능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22개 과목 문제를 출제하는 현 체제하에서도 수능출제 및 난이도 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48과목별 문제를 출제하고 체감 난이도까지 비슷하게 맞출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수험장 풍경도 혼란스러울 전망이다. 학생별로 최고 5개영역에서 1개 영역까지 응시영역이 다른데다, 수리와 사탐.과탐.직탐에서 선택과목수와 종류도 또 다르게되기 때문이다.

먼저 시험을 끝낸 수험생과 시험이 남은 수험생간, 같은 영역내에서도 선택과목수가 다른 수험생간 응시시간 조절과 시험장 입출입 문제까지 신경 써야 하며 고사장배치도 복잡해진다.

교육부는 하루에 모든 시험을 마치도록 한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이틀로 나눠 시험을 치르는 방안도 검토할 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의견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자연계 기피 심화 가능성 = 현재 자연계열 응시자들이 보게되는 수리 `가"형의 경우 수리Ⅰ,Ⅱ와 함께 미분과 적분 등 심화선택과목 3개중 1개를 택하게 돼 현재보다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여 자연계 기피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

또 과학탐구에서도 최대 4개의 선택과목을 공부해야 하는 부담이 상대적으로 사회탐구보다 커 역시 기피의 요인이 될 수 있다.

내신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내신은 같은 계열내 석차를 비교평가해 등급을 매겼지만 인문계.자연계 구분이 없어져 전체 재학생을 대상으로 과목별 석차를 비교평가해 등급을 매길 경우 상대적으로 숫자가 적은 자연계 학과 지망학생들은 불리할 수 있다.

◇학교여건 따라 유불리 극명 = 학생수와 교사수가 많은 도시지역 학교와 그렇지 못한 학교의 여건에 따라 선택과목 운영역량이 달라지므로 학생들의 유불리가 엇갈리게 된다.

또 특수목적고나 사립고 등 학교형태별 재정상황이나 교육시설 환경, 교사의 자질 등에 따라 선택과목 운영의 질적 수준도 상당히 달라질 수 있어 역시 형평성 시비가 일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고교간의 경쟁과 여건이 좋은 고교로 옮기기 위한 전입과 전출 등도 예상된다.

◇재수는 어렵다 = 현재 고교 1학년생 이상은 2004학년도 입시에서 실패하면 2005학년도 입시에 재도전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입시제도가 대폭 바뀌는데다 현재 고교 1학년 이상은 6차 교육과정을 적용받아 공부했기 때문에 배우는 내용이 현재 중3과 완전히 다르다.

물론 대부분 교과목은 교과이름만 바뀌는 경우가 많지만 아무래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서울=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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