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성 이사·서귀포지사장

앞으로 이틀만 지나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이 시행된지 한 달이 된다. 길지 않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공직사회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의 생활에까지 벌써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일단 모임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로타리클럽이나 라이온스클럽 등 각종 친목단체에 가입한 공무원 신분의 회원과 함께 회식을 할 경우 비용이 1인당 3만원이 넘으면 초과분을 갹출해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겹쳐 아예 모임에 나오지 않는 공무원들이 적지 않다. 또 일반인과는 물론 공무원끼리 어울리는 술자리도 줄어들면서 자의반타의반 '저녁이 있는 삶'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밖에 내년도 기관장 업무추진비를 크게 줄이겠다는 지방자치단체도 속출하고 있다. 

강원도는 최근 최문순 지사의 업무추진비를 올해 1억6720만원에서 50% 감축한 8360만원만 편성한다고 밝혔다. 부산시 기장군수는 업무추진비 5280만원을 전액 삭감키로 했는가 하면 경기도 부천시장은 20%, 전북 전주시장은 10%를 줄이기로 결정했다. 

기관장이 주민과의 식사나 선물비용, 경조사비, 각분야 유공자 위문 등에 쓰면서 과거 판공비로 불렸던 업무추진비를 아예 폐지하거나 삭감하는데 대해 일부 지나치다는 반응이 없진 않다. 하지만 청탁금지법으로 지출 금액은 물론 지출 대상도 엄격히 제한됨에 따라 당연한 조치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대한민국은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2016년 9월28일과 그 이전으로 나뉠 것이라는 평판 속에서도 공직사회에는 '3·5·10'(식사·선물·경조사비 한도액) 규정을 무색케 하는 각종 특혜가 여전하다.

공무원연금공단은 현직 공무원에게 본인이나 자녀의 국내 대학 등록금 범위 안에서 납부액 전액을, 해외 대학교는 연간 1만달러 이내에서 실제 등록금 소요액을 무이자로 대부해주고 있다.    
또 제주도와 행정시는 공무원 본인이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 등록금의 50% 범위 안에서 1학기당 150만원(최대 5학기)까지 무상 지원하고 국외훈련(1년단위 해외대학 연수)에 나서는 공무원에게 보수는 물론 학비와 체재비까지 전액 보조하고 있다.

직무와 관련이 없다 하더라도 3만원이 넘는 식사조차 제공할 수 없게 하면서 지자체 등이 몇 천만원을 무이자로 빌려주거나 1000만원 가까이 거저 주는 것은 일반인과 큰 차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제주도와 행정시에 따르면 무이자로 학자금을 대부받아 상환하고 있는 공무원이 현재 제주도 336명, 제주시 122명, 서귀포시 86명 등 총 544명에 이르며 대학원 학자금을 지원받은 공무원은 제주도 65명, 제주시 15명, 제주시 11명 등 91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미국·영국·중국 등으로 국외훈련을 나간 공무원도 제주도 4명, 제주시 2명, 서귀포시 1명 등 7명에 달한다.  

이들 혜택이 박봉에 시달리던 1980년대라면 모를까 정년이 보장되고 급여 또한 어느 직장못지 않아 누구에게나 선망의 대상인 오늘날의 공무원들에게 적용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1인당 연간 1억원 안팎이 소요되는 국외훈련의 경우 지자체에서는 그 자리를 결원으로 보고 승진용으로 활용하는 행태도 보이고 있다. 

시책추진업무추진비를 포함해 올해 제주도지사 3억4000만원, 제주시장 1억4300만원, 서귀포시장 1억2200만원에 이르는 업무추진비를 조정한다는 얘기도 아직까지는 들리지 않는다.
청탁금지법이 농축수산업 등 1차산업에 타격을 주고 인간관계를 메마르게 할 것이라는 걱정도 없지 않지만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아가는 것도 사실이다.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를 앞당기기 위한 공직부문에서의 솔선수범이 더욱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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