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남 사회부 차장대우

'수렴청정'(垂簾聽政)은 '발을 내리고 정사를 듣는다'는 뜻으로, 나이가 어린 왕이 즉위했을 때 성인이 되기까지 일정기간 동안 왕대비나 대왕대비가 국정을 대리로 처리하던 통치행위를 말한다.

기록상으로 53년 고구려 제6대 태조왕이 7세로 즉위하자 태후(太后)가 수렴청정을 한 경우가 한국사에서의 최초다. 이보다 앞서 제3대 대무신왕도 11세로 즉위해 누군가가 대리정치를 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기록으로는 남겨지지 않았다. 이를 포함해 한국사 역대왕조에서의 수렴청정은 고구려에서 1회, 신라에서 2회, 고려시대는 4회, 조선시대는 8회가 있었다.

수렴청정은 섭정의 지원세력이 강건할 때 임금이 성년이 돼 안정된 통치를 할 여건을 마련해 주는 긍정의 효과도 있지만, 역사의 평가는 대부분 부정적이다. 마지막 역시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고, 국정은 문란했다. 특히 조선후기 잦은 수렴청정으로 외척인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를 초래했다. 세도정치는 곧 조세제도의 문란, 부정부패와 매관매직의 성행 등의 부작용으로 연결됐다. 또 탐관오리의 득세로 민심이 흉흉해져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는 등 나라가 어지러웠다.

중국에서도 수렴청정이 있었다. 중국 청나라 멸망의 원인이 된 서태후는 아들과 조카를 차례로 왕위에 올리고 수렴청정한 세기적 인물이다. 강유위 등의 변법자강 개혁운동을 진압하고, 의화단의 난을 되레 선동했다. 당나라 때 황제를 칭하고 천하를 주름잡았던 측천무후 또한 수렴청정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과거 왕조 시절에나 있었던 이 단어가 최근 대한민국 사회에서 회자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오랜 인연을 맺고 있는 최순실씨의 비선실세 의혹과 함께 국정에 개입했던 정황들이 드러나면서다. 정치권에서는 "그동안 국민들은 최순실 정권에서 살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최순실씨를 둘러싼 의혹은 과거 정권 말기마다 반복됐던 '권력형 게이트'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대로라면 박근혜 대통령도 역대 대통령들이 그랬던 것처럼 불명예 속에 퇴임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과까지 했지만, 이를 사과로 보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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