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진 한국농업경영인 제주도연합회 회장

우리의 농업·농촌을 이야기할 때 '농자천하지대본야(農者天下之大本也)'라는 옛말을 자주 인용한다.

이 말을 직접 풀이하면 농사를 짓는 일이 천하의 큰 근본이란 말로 농사의 중요성을 담고 있다. 

하지만 '농자천하지대본야'의 중요 초점은 '농자(農者)'다. 24절기와 계절 등 시간의 흐름을 깨닫고 그에 맞게 일을 하는 사람이자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관계를 파악하고 행하는 사람, 즉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숲을 보며 전체의 발전을 추구하는 리더라 할 수 있다.

지금 제주 사회는 농업의 중요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농자는 없다. 제주농업 발전을 위해 행정에서 각종 농업 정책을 수립한다지만 실적 추정이 가능한 생산에만 치중해 농민의 생존에 대한 고민은 없으며, 농민을 위해 조직된 농협은 있지만 조합의 수익에만 집중해 농민의 안위에는 생각이 없다.

자구적 차원에서 구성된 농민단체가 제주에만 수십개가 있지만 대부분 제 역할을 하기 벅찬 실정이다. 제주 농업 발전에 앞장서겠다고 선언한 이들 모두 '농자'임을 자처하고 있지만 대부분 야누스의 두 얼굴을 가진 자칭 '농자'들이다.

지금 제주농업은 FTA에 따른 시장개방과 기후변화에 의한 농산물 생육 환경 변화, 농산물 가격 폭락 등으로 농가소득은 줄고 부채만 늘어 점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으며, 이주자의 증가로 전통적인 농촌공동체도 조금씩 와해돼 가는 등 제주농업·농촌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새로운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중심축, '농자'를 찾아야 한다.

최근 제주도가 추진하고 있는 농업회의소에서 '농자'에 대한 실오라기 같은 희망이 보인다. 농업회의소는 순수 민간 농업계를 대변할 수 있는 대의기구로 농업회의소에 참여해 회비를 내는 회원들이 민주적으로 대표자를 뽑고 각자의 의견을 제시해 농업계의 공통된 대표 의견을 표출하고 행동하는 공식기구다. 행정, 농협, 농민단체를 비롯해 개별 농가들도 개인회원 자격으로 참여할 수 있어 어떠한 단체 또는 협의체보다 강한 제주 농업계의 대표성을 가질 수 있다. 

농업계의 각계각층에서 참여한 농업회의소는 제주농업·농촌의 변화와 새로운 흐름 그리고 시대적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며, 제주도와 정부의 농업정책 수립에 다각적으로 영향력을 미쳐 진정 제주농민이 바라는 정책 수립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제주 맞춤형 농정협의체 모델이 될 것이다.

또한 제주농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제주농업 발전에 적합한 자문, 교육, 연구, 조사가 가능할 것이며, 농업 관련 지자체와 정부의 위탁사업 수행으로 제주농업 발전과 농민 복지 향상에 일조할 것이다.

향후 수산분야까지 확대될 경우 농업회의소는 농어업회의소로 변경돼 제주 1차산업계의 대표적인 '농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단, 농업회의소를 추진하는 과정에 있어 각 기관과 단체의 사리사욕을 배제해야 한다. 각 기관과 단체의 이익을 주장하며 농업회의소 설립을 추진한다면 결국 기반이 약해져 얼마 못가 무너져 내릴 '사상누각(砂上樓閣)' 농업회의소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농업회의소 설립 추진에 있어 각 기관과 단체를 생각하지 말아 달라" 

지난 7일 제주농업회의소 제2차 실무TF팀 회의에서 모 인사의 말이 뇌리에 박힌다. 제주농업과 농민의 생존의 위기 속에서 농업회의소가 미래 제주농업의 실오라기 같은 희망이자 제주농업의 전체를 이끌 수 있는 '농자'이길 11월11일 '농업인의 날'에 작은 기대를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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