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훈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

2015년도에 발간된 「창작여건 개선을 위한 문화생태지도 구축사업 보고서 1」에 따르면 문화예술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문화예술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공간'을 묻는 질문에 '공공창작공간'이라고 대답한 응답자가 24.3%(187명/770명)로 가장 많았고, 그 뒤를 이어 공공발표공간, 민간창작공간, 자료 공간, 예술인 커뮤니티공간 순으로 조사됐다. 특히 별도의 작업공간 소유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56.8%(437/770명)가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2년 전 조사 결과이니 지금 다시 조사한다면 수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2년 사이에 외지인의 제주이주는 더욱 급증했고, 부동산 투자열기는 훨씬 더 뜨거워졌으니 말이다. 이러한 현실은 변두리의 작업실 하나도 지역예술인들이 차지할 자리도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창작스튜디오란 예술가들의 창작 산실로, 화가들에게는 아뜨리에 또는 화실로 불리던 작업실이 그것이요, 춤꾼들에겐 제대로 된 연습실, 작곡가나 음악인들에게는 방음장치가 갖춰진 연습실, 작곡실 등이다. 

청년실업의 시대, 예술관련학과 출신 졸업자들의 실업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전공학부를 졸업한 인재들이 전공을 살려 사회생활을 이어가는 비율이 전체 5%도 되지 않는다는 통계조사결과도 있었듯이 예나 지금이나 예술로 밥먹기가 쉽지 않았던 사정이 이제 더욱 각박해진 셈이다.

예전에는 대학에서 전공하고 사회에 나오면, 웬만한 개인작업실 하나쯤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그림이 안 팔린다고 하더라도 작업실 하나 정도는 개인이 장만할 수 있었다. 시내 중심가가 아니면 변두리 작업실 하나 구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평당 1000만원을 호가하는 부동산 폭풍의 시대에 작품마저 팔리지 않는 작가들에게 작업실은 사치가 돼 버린 것이다. 
21세기 문화의 시대라는 요즘, 문화예술의 섬을 모토로 내세운 원희룡 도정하에서도 이러한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은 이번 조사결과를 토대로 2017년도 예산에 유휴공간을 활용한 창작스튜디오사업에 나서고 있으나 수요에 비해 공급이 태부족인 상황은 바로 개선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원 도정이 문화정책 모토로 들고 나온 '문화예술의 섬 조성'에 '장님이 코끼리다리 만지기' 식의 다양한 해석과 오해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문화예술인의 존재다. 무엇보다 지역작가들의 창작활동이 선순환돼야만 글로벌한 문화예술의 섬도 이뤄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역문화정책에서 예술인들의 피부에 와 닿는 사업으로 창작스튜디오를 마련해주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당장 수요에 부응하는 창작스튜디오 공급이 여의치 않으면 현재 임대작업실을 사용하고 있는 젋은 작가들의 임대료를 지원해주는 것도 수요에 충당하는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청년작가들이 창작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작가로서 성장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가장 기초가 되는 '공공창작공간' 조성과 지원사업은 문화예술의 섬 조성을 위해 당장 추진해야 할 긴요한 사업이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