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논설위원

건축가처럼 오래된 직업도 없다. 인류가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부터 건축가는 항상 그 곳에 있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침묵의 기념비 종묘 등 수많은 문화유산과 건축가는 함께 했다. 예부터 건축가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서구 문명의 시원이 되는 그리스 시대에 건축은 '아르키텍토니케(architectonice)'로 불렸다. 이 단어는 이후 건축을 뜻하는 영어인 아키텍춰(architecture)가 된다. 그리스 사람들은 왜 건축을 아르키텍토니케라 불렀는가. 그 의미는 이 말을 만든 두 개의 단어인 아르케(arche)와 테크네(techne)에 숨겨져 있다. 아르케는 처음, 시초, 원리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모든 뜻을 묶어보면 '근원'이라는 말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을 아르케의 학문이라고 했는데, 이는 철학이 근원을 다루는 학문이라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테크네는 테크놀로지의 어원으로 '기술'이라는 뜻이다. 건축을 지칭하는 아르키텍토니케는 이 아르케와 테크네의 합성어인 것이다. 

아르케와 테크네의 의미를 가진 '건축'이라는 단어를 서울대 김광현 교수의 말을 빌려 표현하면 건축은 "근원을 아는 자의 기술"이며, 건축가는 "근원을 알고 이를 기술로 바꿀 줄 아는 자"를 말한다. 그러니까 건축가는 '근원을 기술로 다루는 자'라 할 수 있다. 그리스 사람들은 건축이나 건축가를 단지 집을 짓는 행위나 건물을 축조하는 사람이 아니라 근원을 다루는 일로 본 것이다. 

근원을 다룬다는 깊은 뜻을 가진 건축과 건축가의 의미를 현 시대에 비추어보면 많이 부끄럽다. 전문가로서 건축가는 직업의 한 종류가 되었고, 건축가에게 요구되는 것은 근원에 대한 사유가 아니라 전문적인 지식이 된지 오래다. 이는 우리의 교육에서부터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대학 교육이 비슷하지만 대학의 건축교육도 어떻게 하면 멋진 집과 건물을 디자인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러다보니 졸업생들이 사회에서 건축가가 되었을 때, 세상의 근원에 대한 물음보다는 어떻게 하면 싸고 멋진 집을 지을 것인가에 집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근원을 다루지 못하거나 근원을 다루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와 건축은 점점 천박해지는 것일 수 있다. 건축과 관련되어 제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은 점점 더 지울 수 없다. 건축은 많이 짓고 멋지게 짓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어야 하며, 건축가도 단지 건물만 디자인하는 사람은 아니어야 한다. 건축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 사람이 영위해야 할 근본적인 가치를 담아야 하고 건축가는 이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시민들이 천박한 도시와 건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건축이 근원을 다루어야 한다는 점에서 보면,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들에 대한 실마리도 찾을 수 있다. 엄청나게 큰 땅을 개발할 때 고민해야 할 것은 개발이익도, 부동산 가치 상승도 아니다.

지금 고민해야 할 문제는 이 땅, 제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질이 어떻게 바뀔 것이며,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겪을 일상성의 변화일 것이다. 현재 제주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이 몇 천억의 개발이익과 몇 천명의 일자리 창출로 포장되고 있다.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아주 오래전 그리스 사람들은 건축에 아르케라는 근원의 뜻을 담았다. 건축이 근원을 다루지 않는다면 그 안에서 힘겹게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우리의 도시와 건축이 무엇을 생각하고 다루어야 하는지 진지하게 물어야할 때이다. 소망하건대 제주가 개발을 위한 땅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땅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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