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휴 전 초등학교 교장·논설위원

"저는 한국 남자와 결혼을 하면 행복하게 살게 될 거라는 꿈과 기대를 안고 한국으로 왔습니다. 하지만 꿈은 곧 실망으로 이어졌습니다." 

인천공항을 거쳐 서울을 지날 때는 높은 빌딩과 넓게 포장된 도로, 수많은 차들과 활기에 넘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 내가 살아갈 한국이 정말 잘 사는 나라구나!"하고 잔뜩 기대를 했단다. 하지만 다시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건너오고 한참을 더 돌아 서귀포시의 어느 작은 동네에 내렸을 때 느꼈던 실망은 너무도 컸다고 말하는 여인의 표정은 많이 일그러져 보였다. 

여인은 울듯이 말을 이어갔다. 이웃 사람들이 몰려와 동물원의 원숭이 바라보듯 할 때에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말이 통하는 사람도 없고 위로해줄 사람도 없는 머나먼 이국땅에서 남몰래 많이 울었다, 마음을 다잡고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있는 것이 기적 같기도 하다는 말을 듣고 있으려니 정말 많이 미안했다.

늦여름 오후의 햇살을 받은 출연자들의 얼굴은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서귀포 칠십리 문화제의 하나로 열고 있는 제주어말하기 대회. 일반팀은 익숙한 제주어로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아련한 옛 추억 속으로 청중들을 이끌면서 즐겁게 해주었다.

하지만 정작 내 가슴에 울림을 준 것은 서투른 제주어를 구사하는 다문화출연자들의 가슴 짠한 이야기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심사한다기보다 가슴 아픈 꾸중을 듣는 심정이었다. 훌쩍이며 말하던 어느 여인의 마지막 말은 지금도 가슴에 못처럼 박혀 있다. "곱닥헌 새각시 데려당 울리지덜 맙서"(고운/예쁜 색시 데려다가 울리지들 마세요)

지난 16일 발표된 통계청의 '2015년 다문화 인구동태 통계'에 따르면 도내 다문화 혼인건수는 2010년 460건에서 2015년 305건으로 줄어든 반면, 이혼건수는 2008년 111건에서 2015년 170건으로 증가했다. 부푼 꿈을 안고 한국에 왔는데, 당초의 기대와는 너무나 다른 현실에 갈라서는 다문화가족. 이들의 이혼건수가 해마다 늘어나는 것은 구차스럽게 설명을 하지 않아도 짐작되는 일이다. 

한국에 온 외국인을 괴롭히는 데는 한국인의 편견과 이기적인 계산도 한몫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11년을 산 남미 출신 흑인 여성. 이 여인의 말에 나는 다시 부끄러워졌다. "한국말 좀 잘하면 친구들이 한 명씩 한 명씩 없어져요. 영어로 얘기 안 하면…. 저에 대한 관심보다는 영어에 대한 관심이 많았으니까." (SBS스페셜 제작팀, '다른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그녀에게 친절했던 것은 단지 영어를 배우려는 이기심에서였던 것)

"혹시 한국남자하고 결혼할 생각은 없으셨어요?"라는 질문에 그녀는 안타까운 대답을 내놓았다. "불가능합니다. 백인여자하고 같이 있으면 출세했다고 생각하지만…, 흑인하고 같이 있으면 인생 실패했다고 생각할 거니까…"

백인에게는 친절한데 흑인이나 동남아시아 출신들은 업신여기는 우리들. 이러고도 우리 자신을 세계화시대의 선진국민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가장 곤궁한 자의 외침에 귀를 막는다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도 알아듣지 못하게 된다" 독일 출신의 시인이자 극작가였던 B. 브레히트가 한 말이다. 우리는 6·25 직후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고, 그래서 많은 나라사람들로부터 원조를 받으며 겨우 살아났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나온 과거만이 아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데이비드 콜만 교수는 전 세계에서 인구 문제로 소멸하는 첫 번째 나라가 대한민국이 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내놓았다. 출산장려 정책과 함께 다문화사회의 구성원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여 우리와 똑 같은 '우리'로 만들어야 할 때다. 예쁜 색시 데려다가 제발 울리지들 말았으면.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