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영 제주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소장·논설위원

어느 의류수선 가게의 풍경이다. 주인과 손님 두 사람이 와이셔츠를 놓고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밖에서 일하는 아저씨 것이면 고치겠지만, 집에 있는 아줌마가 입을 옷이면 대충 걷어 입으면 되는데 왜 꼭 수선하려는 거예요?" "아니, 이 와이셔츠를 여자가 입을지 남자가 입을지 어떻게 아세요?" 가게 주인의 직업에 대한 성별 고정관념을 드러내는 말들이 이어졌다. 옆에서 듣고 있자니 불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와이셔츠는 남성의 전유물인가?'

지금도 아이들이 읽는 교과서나 동화책에서는 성(性)역할이 구분돼 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TV 등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성고착화에 대한 단면들도 예외는 아니다. 아빠는 넥타이를 매고 서류가방을 들고 나서면, 엄마는 앞치마를 하고 배웅을 하는 장면 등이다. 

우리 세대는 이런 교육을 받았다지만 미래세대의 아이들도 비슷한 것을 보고 자라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런 환경들은 한국의 양성평등 수준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달 발표한 '세계 성 격차 보고서 2016(Global Gender Gap Report 2016)'에 따르면 한국은 성(性) 격차 지수는 조사 대상 144개국 중 116번째였다. 한국의 지난해 순위는 145개국 중 115위였다. 한국의 성 격차는 그야말로 하위권이 아니라 더 아래 바닥권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특히 한국은 경제 참여·기회, 교육 성과, 보건, 정치 권한 등 4개 분야 가운데 경제 참여·기회 부문이 가장 좋지 않게 조사됐다. 보건은 76위, 정치 권한은 92위, 교육 성과는 102위 등 나대로 '선전'했으나 경제 참여·기회가 123위로 크게 처졌다. 경제 참여·기회 중에서도 남녀 임금의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 것으로 지적됐다.

그렇다면 왜 지구촌은 양성평등을 논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보다 잘 살기 위한 정책이기 때문이다.

가장 양성평등이 잘 실현된 아이슬란드에서는 2살 유치원에서부터 양성평등 교육을 실한다. 무언가를 인지하기 시작할 때부터 양성평등 개념을 배우는 것이다. 평등을 기조로 모든 분야에서 실질적인 여성 할당제를 도입하고 있다. 

기업 이사진의 40%는 의무적으로 여성으로 구성돼야 하고, 정당의 여성후보 할당제로 인해 어느 정권이든 40% 이상의 여성장관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OECD 국가 중 '여성이 일하기 좋은 나라' 1위다. 핀란드는 100년 전만 해도 유럽의 대표적 빈국이었다. 당시 핀란드 정부는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려면 여성들을 제대로 교육시켜 여성 노동력을 십분 활용해야 된다고 믿었다. 덕분에 여성은 고등교육까지 받아 남성과 동등한 능력을 갖추고, 정계를 비롯한 사회 각계각층에서 활약하고 있다. 핀란드의 남녀평등은 '페미니즘'이라는 거창한 구호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실시됐으며 100년이 지난 현재, 명실상부한 복지국가의 기틀이 됐다.

주장하는 것은 페미니즘이 아니다. 여성과 남성의 직업과 직무를 성으로 구분할 것이 아니라 능력에 맞게 일을 하는 평등한 직장문화를 만들자는 것이다. 성평등 환경을 조성하고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한 각계의 노력이 있어야만 한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처럼 남성과 여성은 뇌 구조부터 다르다는 인식은 사실이 아니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남녀의 뇌구조는 비슷하고, 그 역할 또한 혼재돼 있다. 직업의 세계에서는 남녀의 경계가 없어지고 있다. 차이에서 시작된 차별을 떨쳐내야 한다. 그래서 고령화 저출산 시대의 저성장에 대한 해법을 양성평등에서부터 찾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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