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홍석 전 동국대교수 겸 학장·이학박사, 논설위원

예전부터 견리사의(見利思義)란 글귀가 전해져왔다. 글을 읽는 선비들은 이를 높게 평가하며, 도덕규범으로 여겨왔다. 글귀에는 '이(利)로운 것을 보았을 때, 의(義)로운 것을 생각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이것이 진리이며 성현들이 고행을 통해서 얻어낸 이치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공감대를 형성해왔건만 '혹심(惑心)의 뿌리'를 자극하는데서, 사람의 마음을 흔들면서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사람들은 못 가진 것에 대해 충족시키려는 소유욕이 생겨나는 한편, 가질수록 더 갖고 싶은 욕망에 젖어든다. 소유욕에서만큼은 '무한성에 가까운 것'이 인간이 갖는 본능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제할 줄 모르는 인간심리와도 관계되며, 이런 사람일수록 높은 언덕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이권(利權)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있다. 이것을 농단(聾斷)임으로, 세상인심은 이를 경계해왔다.

그런 까닭에 '혹심의 뿌리'를 잘라내지 않고 '참다운 인간상'을 드러낼 수 없게 됐다. 금강산에는 하얀 뼈대와 같은 '날카로운 봉우리'들이 솟아있다. 이것이 '악한 마음마저 잘라내는 상징물'이며, 예전부터 수행터전으로 삼아온 근거가 돼왔다. 

통일신라 말기의 마의태자(麻衣太子)도, 고려태조에게 옥쇄를 헌납한 '부왕(父王)의 처사에 반발'해왔다. 내면에 '권좌(權座)에 오르려는 욕심'이 발동한데 따른 것이며, 이런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서 금강산으로 들어갔다.

욕심은 세속사회에 잘 드러난다. 예전부터 세상을 '얼룩진 홍진(紅塵)'에 비유하며, 평가를 절하해온 근거가 여기에 있었다. 상대적으로 순수자연과 더불어 때 묻지 않은 세계를 무릉도원으로 표현하며 이상시해 왔다. 열매와 풀잎으로 연명하면서도 '청정한 마음'에 우선가치를 두어온데 따른 것이다. 자연주의학파를 대표해온 화담(花潭)서경덕의 경우, 벼슬길을 버린 채 자연에 의지해서 살아가며, 다음과 같은 글귀를 남겼다.

'부귀는 다투어야 하니 끼어들기 어렵고, 산수는 금하는 이 없어 몸 두기가 편하네. 나물 캐고 낚시질하면 배를 채울 수 있고, 달과 바람 읊조리니 정신이 맑아지는 구나'라고.

인간세계가 서바이벌(survival)게임으로 표현하는 치열한 경쟁사회라면, 이런 다툼마저 없는 것이 자연이므로 '살아가기에 편한 곳'임을 알리고 있다.

여기에다 풍족하지 않더라도 먹을 것이 있고, 정신마저 맑아지는 효과까지 있음으로, 부러울 것이 없는 곳으로 여겨왔다.

결국은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시작해 권력과 물욕에 젖어든 인간탐욕이 문제를 키워왔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알리는 동시에, 행복이 '풍요로운 물질'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행복지수(指數)에서 히말라야 산지에 자리한 부탄(Bhutan)이 '세계가 인정하는 나라'로 알려졌다. 자연이 압도하는 산지환경이면서, 마음을 다스리는데 가치를 두어온데 따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경제적 풍요로움에서 현재 앞서가더라도, 자살이 많은 '불행한 나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근본에서 더 가질려는 탐욕(貪慾)심과 더불어, 지나친 경쟁의식이 불행을 불러온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상황에서도 '돈과 물질에 우선'하는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앞세워온 '전통적 윤리'마저, 뒤로 밀려날 것은 당연하다. 

그 결과 이익을 앞세우고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정신'을 무너지게 하는 것은 물론,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세상을 얼룩지게 만들게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 안정과 번영에 초점을 맞춘 '희망찬 미래'란 기대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된 물질만능주의'에 편승하기보다, 분수에 맞게 '마음을 다스리고 바꾸는 것'이 옳은 길임을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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