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봉훈 변호사

최근 연일 신문과 방송의 소재로 오르내리는 이른바 비선실세 논란과 관련해 눈여겨볼 대목이 있어 소개한다. 사연인즉 실세로 지목받는 사람은 딸이 남자친구와 사귀는 문제로 어지간히 골머리를 썩였는지 딸과 예비사위에게서 미리 상속포기 각서를 받아두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미리 받아둔 상속포기 각서는 과연 효력이 있을까.

상속은 피상속인이 사망함으로써 개시된다. 상속의 포기는 상속이 개시된 후 일정한 기간 내에만 가능하고 가정법원에 신고하는 등 일정한 절차와 방식을 따라야만 그 효력이 있으므로, 상속개시 전에 한 상속포기약정은 그와 같은 절차와 방식에 따르지 아니한 것으로 효력이 없다는 것이 판례다. 

따라서 상속인 중 일인이 피상속인의 생존 시에 미리 상속을 포기하기로 약정했다고 하더라도, 상속개시 후 민법이 정하는 절차와 방식에 따라 상속포기를 하지 아니한 이상, 상속개시 후에 자신의 상속권을 주장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행사로서 권리남용에 해당하거나 또는 신의칙(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의 행사라고 할 수 없다. 그러니 수천억원대 재산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비선실세 당사자가 아무리 딸과 사위를 윽박질러 상속포기 각서를 받고 공증까지 받았다고 한들 죽을 때 재산을 싸들고 갈 수 없는 이상 그 막대한 재산은 고스란히 법정상속인인 딸에게 상속되고, 혹여 딸이 먼저 사망하기라도 하면 대습상속 규정에 따라 손자와 사위에게 공동상속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생전에 딸이나 사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나 재단법인 앞으로 재산을 넘겨주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이 경우에는 또 유류분 문제를 비켜갈 수 없다. 법정상속분의 절반에 못 미치는 재산밖에 상속받지 못한 사람이 수증자에 대해 갖는 유류분 반환청구권 역시 상속개시 전에 이를 포기하는 것은 무효라는 것이 판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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