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근 전 한마음병원장, 논설위원

지난 10월10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정치가 한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를 보면 연세대학교 송 복 명예교수가 '특혜와 책임'이라는 책을 통해 우리나라의 문제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고 한다.

송 교수는 ''바보야, 문제는 정치다'도 틀렸고 '바보야, 문제는 경제다'도 틀렸다. 지금 우리나라는 돈 많고 지위높은 상류층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외면하기 때문에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한 것'이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필자도 전적으로 동감이 간다.

송 교수의 말은 모든 국민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상층, 즉 부를 생산하는 기업가와 자원을 배분하는 고위직이 문제다. 고위직이란 위세 고위직(국회의원, 고위 관료, 고위 법조인, 장성급 이상 군인과 경무관 급 이상 경찰 등)과 위신 고위직(소위 말하는 저명인사들로 위엄과 신뢰로 먹고사는 대학교수, 언론인, 의료인 등)을 일컫는다.

사실 이 고위직에 해당하는 분들이 그 지위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국회의원에 당선되려면 수만명 이상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이제 세상에서 혼자 잘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그런데도 고위직에 오른 사람들이 저 혼자 잘나서 그렇게 된 것으로 오해하고 있어서 우리나라가 이처럼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것 못지 않게, 아니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이 대부분의 국민들이 아무 부끄러움이나 죄책감이 없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위로는 대통령부터 아래로는 시정잡배까지, 노인부터 어린이까지, 시도 때도 없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부모들도 아이들에게 아무 거리낌 없이 거짓말을 한다. 반갑지 않은 사람에게서 전화가 오면 "엄마 없다고 해라"고 하고, 아이가 울면 "울면 주사 놓는다"고 한다. 이렇게 말하면서 이 말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조차 인식을 못 하는 것 같다. 개중에는 선의의 거짓말도 있다. 의사가 불치병에 걸려 별 방도가 없는 환자에게 "별 것 아니니 식사나 잘 하면 나을 것입니다"라든가, 돌이킬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에게 "잘 될 것입니다"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도 다른 쪽으로 생각해 보면 상대방이 상황을 정확히 알도록 하는 것이 더 좋다고 여겨진다. 불치병에 걸려 치료 방법이 없을 때에는 사실을 똑바로 알려 그 사람으로 하여금 남은 인생을 잘 정리할 시간을 줄 필요가 있다.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신경외과 의사가 남은 생을 살아가면서 쓴 투병기나, 미국 전역을 여행하다 숨을 거둔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는 우리들 마음에 큰 울림으로 다가오며, 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줬다.

물론 개중에는 삶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심한 절망감에 빠지는 분들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생을 생각하며 사신 분들은 남은 인생을 의미 있게 마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제주도에서 대학생 육성 프로그램 중 가장 성공적인 경우로 인정받고 있는 'H. R. Academy'를 시작한 아름다운 서당의 서재경 이사장이 쓴 「제목이 있는 젊음에게」 책을 보면, 얼마 전 일본의 한 잡지가 보도한 기사의 제목이 '한국인은 숨 쉬는 것처럼 거짓말을 한다'였다. 이 잡지는 경찰청 통계를 인용해 '한국에서 위증죄나 사기죄, 무고죄로 기소된 사람이 일본과 비교하면 66배나 많은 수치며, 인구 규모를 감안하면 무려 165배나 많은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거짓으로 말미암아 허비되는 비용이 수십조 원은 되리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 거짓을 막기 위해 투입되는 비용 또한 엄청나다. 국가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맞아 우리 모두 정직을 가장 큰 덕목으로 삼아 올바른 사회로 나가도록 힘을 모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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