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순희, 가을물들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오목과 볼록은 따로 놀고 있다. 서로 염원하지만 닿지 않아 더 요동치는가.

배시시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하는 얌전한 주인답지 않게 이 물건은 도시 부끄럼 탈 줄을 모른다"
제주 출신 강순희씨가 수필집 「가을 물들다」를 냈다. 글을 통해 읽은 세상은 충분히 섬세하다. 그리고 또 날카롭다. 백발일 때 가장 절정인 꽃(억새)를 예찬하는 듯 하면서도 피기도 전에 뽑혀 버린 것들의 한을 달래는 마음에 갈바람에 휘날려 줄 스카프를 만들 생각을 한다. 한 쪽만 볼 수 없는 마음들이 문장으로 엮어 때로는 무겁게, 또 때로는 아프게 다가온다. 저들끼리 배배 꼬이면서 서로 머리채를 잡고 절대 놓지 않을 태세인 넝쿨들에서 오늘을 본다. 처음부터 적당한 거리를 만들어줬으면 좋았을 것을 무심히 넘겨버린 까닭에 건드리면 서로 상처만 주는 상황을 만든 것이 꼭 내일처럼 느껴진다. 언 듯 눈에 들어오는 글들이지만 꼭꼭 씹어 읽지 않으면 넘기기 어렵다.

수필과 비평사. 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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