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수 이중섭미술관 명예관장, 논설위원

63억3000만원, 최근 서울 옥션 홍콩 경매에서 낙찰된 김환기 작품의 가격이다. 몇 해전 박수근의 '빨래터'란 작품이 46억6000만원에 낙찰돼 우리나라 현대미술 작품 중 최고가를 이룬 바 있었다. 이 기록은 얼마 전부터 깨어지기 시작했다. 김환기의 작품이 몇 차례에 걸쳐 기록을 갱신했다. 그리곤 63억3000만원에 이른 것이다. 향후 김환기가 이를 갱신할지 다른 미술가가 갱신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 추세로 본다면 김환기가 아닐까 예단할 뿐이다. 그만큼 김환기가 국내·외에서 국내 현대 작가로는 가장 인기가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작고한 지 52년, 그의 탄생으로부터 따지면 올해로써 105세가 되는 셈이다. 그러니까 60세를 갓 넘기고 작고했다. 미술사적으로 본다면 그는 한국 현대미술사의 최초의 추상미술가의 한 사람으로 주목을 받았으며 1945년 해방 이후는 우리 고유한 정서를 다룬 소재로 독자적인 위상을 차지했다. 달과 산과 항아리가 그의 1950년대, 1960년대 초까지 주제의 중심을 이뤘다.

그가 다시 추상의 세계로 진입한 것은 1964년 뉴욕에 정착하면서였다. 점과 선을 중심으로 한 구성세계를 추구했다. 그리고 그의 만년에 해당하는 1970년부터 전면 점화의 세계에 도달했다. 화면 가득히 점만으로 뒤덮힌 구성이었다. 그는 점 하나하나를 찍을 때마다 고국에 있는 친구와 제자, 그리고 모든 인연을 생각하면서 완성해갔다고 했다. 그러기에 그것은 단순한 점들이 아니라 그리움의 표상이었다. 그가 1970년 한국미술대상전에 출품해 대상을 받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에서도 이 그리움의 표상이 아로새겨져 있다. 그리곤 1974년 그토록 그리던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뉴욕의 한 병원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가격을 보고는 입을 쩍 벌린다. 전연 예상하지 못한 충격의 반응인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이 가격이 상대적으로 그렇게 높은 것은 아니다. 이미 작고했지만 현대작가인 앤디 월홀의 작품이 400억원대를 기록한 것이나, 아직 생존해있는 작가 가운데 100억원대를 넘는 작가들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말이다. 우리의 경제 규모나 우리의 국가적 위상을 생각했을 때 우리의 대표적인 미술가의 작품 가격이 100억원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도리어 좀 아쉬운 감이 있다. 조만간 100억원대를 넘을 것이라 보지만 지금의 가격으로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라 본다. 

작품의 가격이 작품의 예술적 가치와 비례하지는 않는다. 가격의 책정엔 많은 변수가 따른다. 특히 작고한 경우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다는 희귀성도 그 가운데 하나다. 대부분의 경우, 이 값이 창작가에게 고스란히 돌아가는 것은 아니란 사실이다. 김장철만 되면 배춧값이 금값이란 아우성이 무성하지만 그 금값이 생산자 농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가지 않듯이 작품가도 이와 비슷한 경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에 팔려나간 작품의 경우, 작품가는 현재 소장하고 있는 컬렉터에게 돌아가지 작가와는 관계가 없다. 그 작품이 여러차례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서 실익을 챙기는 것은 컬렉터와 중개상인 화상들이다. 생전에 작품 덕을 보는 예도 물론 없지 않다. 최근 국제적으로 각광을 받고 높은 가격에 팔려나가는 단색화가 그 좋은 예다. 그러나 많은 단색화가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작고했다. 작품 가격은 상승해도 작가는 여전히 배고프다는 말이 이런 정황을 반영해 준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이 창작하는 작품을 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창작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적지 않은 작가들이 작품이 상품으로 치환되는 것을 못 견뎌 한다. 지나친 결벽증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영혼을 상품으로 판다고 생각했을 때 그 작가가 지니는 고뇌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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