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주 사회부 부국장

지방의회는 매년 11·12월이면 예산전쟁을 치른다. 예산을 최대한 지켜내려는 집행부와 허튼 돈을 한 푼이라도 깎아내려는 지방의회 간에 치열한 밀고 당기기가 벌어진다. 지역구나 개개인 의원들에게 들어온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예산을 한 푼이라도 더 챙겨보려는 노력까지 더해지면서 그야말로 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제주도의회도 마찬가지다. 

제주도와 도의회의 힘겨루기가 정점에 달했던 때는 지난 2014년 12월이다. 이해 11월부터 2015년 예산안 3조8194억원에 대한 도의회 심사가 진행됐으나 '도의원 1인당 20억원 요구설'을 둘러싼 폭로전과 갈등정국을 연출했다. 결국 준예산 시행은 막았지만 2015년 예산안중 1636억원이 삭감되면서 기관·단체 운영과 현안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리며 도민사회의 공분을 샀다. 2015년 2월 조기추경으로 예산갈등은 봉합됐으나 도와 도의회간이 예산전쟁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예산은 주로 도민의 세금으로 이뤄지는 것이니 만큼 그 편성과 사용에는 어떤 엄격한 준거기준을 정해 놓고 거기에 맞춰야 한다. 그 준거기준으로 말하는 것이 예산의 원칙이다. 현대적 예산원칙으로 강조되는 것은 계획의 원칙, 책임의 원칙, 보고의 원칙, 예산의 적절한 수단구비의 원칙, 다원적 절차의 원칙, 재량의 원칙, 시기 신축성의 원칙, 예산기구 상호성의 원칙 등이 있다. 또한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 예산은 각 회계연도의 경비는 당해 연도의 세입으로 지출해야 한다는 회계연도 독립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회계연도 독립의 원칙에는 반하는 것이지만 예산집행의 신축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명시이월이 인정되고 있다. 명시이월은 세출예산 중 해당 연도 내에 지출을 집행하지 못할 것이 예측되는 항목에 대해 미리 도의회의 승인을 얻어 다음 연도에 이월해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주도의 예산집행을 보면 회계연도 독립의 원칙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것 같다. 명시이월 금액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제주도의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행정시를 포함한 제주도의 명시이월사업(최종예산기준) 건수 및 금액은 2012년 214건 2441억여원, 2013년 250건 2661억여원, 2014년 358건 3191억여원, 2015년 480건 4873억여원이다. 건수는 물론 금액도 매년 늘었다. 2012년 대비 2015년에는 이월사업 금액이 무려 2배나 늘어났다. 2016년 명시이월 사업건수도 전년대비 31.5% 증가한 631건에 달하고 있다. 금액은 4879억여원이다. 제주도의 2016년 최종예산 4조7144억여원의 10.4%에 달하는 규모다.

명시이월 사업이 많아지는 것은 당초 사업계획이 잘못됐거나 공직사회가 일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는 등 집행능력 부족을 드러낸 것이다. 특히 제주도가 최근 3년간 5000만원  이상 사업 중 30% 이상 감액한 규모는 2014년 25건 244억여원, 2015년 104건 742억여원이다. 올해도 139건 850억여원이다. 면밀한 검토 없이 무턱대고 예산만 확보했다가 결국 감액하면서 시급히 필요한 곳에 써야 할 재원이 사용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내주머니 돈이라면 이렇게 허투루 계획을 수립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명시이월 예산이 많다는 것은 예산을 배정한 당초 사업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거나 시급한 사업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매년 제주도가 책정할 수 있는 예산은 한정돼 있다. 한정된 재원을 꼭 필요한 곳에 적기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예산편성 단계에서부터 더욱 정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래서 명시이월을 최소한의 범위로 그쳐야 한다. 제주도는 지금이라도 명시이월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예산편성 만큼 예산결산에도 심혈을 기울이도록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 사업성과를 냉철히 평가하고 인사제도와 연계시켜 예산이 과다하게 편성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2년 연속 4800여억원의 예산을 이월시키면서 예산이 없다고 하소연 하는 공무원을 보면서 도민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 답은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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