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홍석 전 동국대교수 겸 학장·논설위원

교통노선에는 시발점(origin)과 종착점(destination)이 있게 마련이다. 시간에 비유할 경우 전자가 시작이고, 후자는 끝에 해당한다.

이런 원리는 연월(年月)에도 적용해왔다. 연말연시에 '송구영신(送舊迎新)의 글귀'를 내세우며, 묵은해를 보내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려는 취지이건만, 우주의 기본원리에는 부합되지 않는다. '시작도 없고 끝이 없는 것'으로 단정하며 '무시무종(無始無終)의 글귀'를 내세워왔기 때문이다.

무한성에 가까운 변화를 전제한데 따른 것이다.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해가지는 '변화상을 관찰'해온데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지구가 궤도를 따라 자전(自轉)과 공전을 거치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유시유종(有始有終)'으로 전환하게 됐다. 오늘날 통용되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상반된 결과를 내놓은 근거도 여기에 있었다.

인간이 제시한 우주질서이더라도, 창의성을 안는 점에서 높게 평가한다. 중요한 것은 연례행사처럼 주기(週期)를 적용해온 점이다. 하지만 해와 달에 걸쳐, 어느 것에 근거하느냐에 따라, 인간에게 '가시적 변화(visitable change)'를 달라지게 만들었다. 이것이 지역에 따라 차별되는 문화형태이며, 풍습으로 이어지게 했다.

서양사회는 태양에 근거해왔다. 그러므로 경도(longitude)에 따라 시간과 날짜변동을 식별해왔을 뿐 '고정된 항성(恒星)'에 근거해온 까닭에, 어디에서도 변화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됐다. 달에 근거한 우리의 경우는 다르다. 초승달에서 시작하여 보름달에 이르기까지, 형태를 달리하는 변화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성쇠(盛衰)에 적용하며, 각종 이름에도 반영해왔다.  

제주도에는 명월(明月)이란 지명이 있는데 '밝고 둥근 달을 상징'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빛과 형태에 근거'한 긍정적인 이름으로, 높게 평가해왔다. 심지어는 나라운명까지 달과 연계하며 기대치를 모아왔는데, 경주의 반월(半月)성은 대표적이다. 반월은 시간이 지날수록 만월(滿月)로 이어질 가능성과 융성의미까지 함축하고 있다. 경주를 왕도로 삼아온 신라의 경우, 처음에는 '육촌'(六村)에서 출발한 작은 부족국가였다. 

이후에 삼국통일과 천년사직을 이어가면서 역사에 남을 정도로 반월성이 갖는 의미는 크게 됐다. 그래서인지 전성기를 구가(謳歌)하던 백제마저, 한 때에 '백제는 만월이요, 신라는 반월이라'는 유행어가 나돌았다. 절정기에 놓인 만월을 부정적으로 바라본 것인지, 신라의 장래에 대하여 기대치를 모아온 것인지, 해석에 따라 달리해왔다. 대세는 후자 쪽으로 기울었고, 백제의 멸망과 신라의 삼국통일로 이어졌다. '꿈보다 해몽(解夢)'이란 글귀를 떠올리게 만든 장면이 됐다. 

고려왕도에는 만월대(滿月臺)를 조성해왔다. 보름달처럼 '세상을 환하게 비추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몰락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음으로, 무상(無常)한 것이 세상임을 보여주고 있다. 유한적 존재일수록 한정된 시간에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에 대하여 '심사숙고하는 정사(正思)의 자세'가 필요함을 암시하고 있다.

연말연시를 맞이해 이런 결의를 다지면서, 지나온 세월을 반성하고 점검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성공사례에 대해서는 장려하는 한편, 실패사례에 대해서는 '재출발의 전환점(turning point)'으로 삼으며, 망년(忘年)을 통한 결의가 마땅하기 때문이다.

인생도 '생멸(生滅)의 표현'처럼, 시작과 끝이 있게 마련이다. 이런 이치(理致)를 떠올릴 때 '후회없는 삶'을 살아가는 일이야말로 지혜로운 인생길로 통하게 된다. 이를 의식하고 서로가 시범을 보이면서 '권장하는 미덕(美德)'을 보여 나갈 때인 것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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