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편집부장 대우

'영원의 고리 위에 인간이 만든 나라는 하나밖에 없다. 주(周)나라. 그 이전의 모든 나라는 주나라에 도달하려는 꿈, 그 이후의 모든 나라는 주나라로 돌아가려는 꿈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으로 살아 있었던가. 나의 생은 영원한 꿈속의 물방울 하나. 꿈속의 꿈이었다'(이인화 「영원한 제국」)

1993년 출간돼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영원한 제국」은 정조시대 의문의 살인사건을 다룬 팩션 소설(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새로운 장르)이다. 이 소설의 형식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하루라는 시간속에서 긴박하게 전개되는 스토리와 능란한 플롯은 영화로 제작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소설은 18세기 조선시대 절대왕권을 추구하는 정조와 남인, 신권정치를 추구하는 노론의 대립을 다룬다. 영조는 집권세력이었던 노론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은 사도세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금등지사(억울하거나 비밀스런 일이 있어 후세에 이를 밝혀 진실을 알게 하는 문서)에 '올빼미'라는 시를 적어 보관한다. 금등지사가 공개되면 죄인 신분으로 죽은 사도세자의 무죄를 입증해 명예를 회복하고 정조의 정치권 권위도 회복할 수 있다. 정조는 금등지사를 이용해 노론을 치밀하게 제거하려고 한다. 금등지사의 존재는 정확하게 알려진 것이 없지만 소설속 정치적 갈등의 근원으로 묘사돼 긴장을 더한다. 당시 이 소설은 권력기반이 취약했던 남인이 노론에 의해 짓밟히는 것으로 묘사돼 지나치게 남인 중심에서 기술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영원한 제국」의 작가 류철균(이인화는 필명) 이화여대 교수가 최순실씨 딸 정유라에게 학점 특혜를 줬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류 교수는 조교에게 정씨의 시험 답안을 대신 작성하도록 하고 정씨에게 학점을 줘 낙제를 면하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92년에 소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를 필명(이인화)으로 발표하고 이 소설에 대한 평론을 본명으로 쓰는 기행을 하기도 했다. 또 1997년 소설 「인간의 길」에서는 박정희 미화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추구한 영원한 제국은 결국 '박근혜 제국'이었나. 한때 문단의 신성이었던 작가의 추락을 지켜보는 독자들은 씁쓸함을 금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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