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훈식 시인·제주문인협회 회장

작년 말에 아내가 이불을 내다버리고 하여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결혼할 때 혼수로 가져온 이불을 이제 버리려고 한다는 거다. 결혼한 지 43년이 되었으니 새삼스럽게 이불을 들여다보았다. 버리기 좋게 개서 줄로 묶었지만 노숙자를 보는 것 같아 심란했다. 원앙금에 우리 부부의 운우가 녹아있다고 생각하니 버리는 길밖에 없는지 고민했다.

혹여 내 유물로 전시하게 되면, 이 또한 상당한 자료건만 정작 남들이 보고 들으면 어이없어할 거라는 판단에 주저하다가 아직은 쓸 만해서 누군가 다시 이불로 덮지 않기 바라면서,  지금 덮는 이불을 전시하면 된다고 위안하고 결국 버렸는데 그래도 추억을 내다버렸다는 아쉬움에 더불어 노인이 된 아내를 슬그머니 바라보았다.

정유년 새벽 해맞이로 '새별오름'을 찾았다. 따뜻한 겨울 날씨라서 해는 제대로 보았지만 저 해는 세상에서 하나뿐이고 세계에서 같은 해이므로 새삼스럽지 않았다. 생일도 태어난 날 말고는 다 기념일이듯이 해맞이도, 새 월력도 인식의 산물로 만든 진실이다.

모든 현상은 사실로 발생한 현상에서 진실은 빚어진다.

집에 와서 TV를 켰다. 전에 보았던 영화 '명량'을 관람하게 되었다. 금년은 붉은 닭의 해인 정유년이고 명량대첩은 1597년 정유년이다. 

명량은 간만 때 바다가 소리를 내며 급류하는 좁은 목이었으므로, 해전 불세출의 영웅 이순신은 좁은 목과 조류를 이용해 13척의 전선으로 명량으로 진입한 일본수군 133척을 향해 일자진을 형성해 적을 향해 돌, 일본 병선 31척을 격파하여 일본수군을 섬멸하여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전공이라서 신명나게 감격하고는 침대 위에서 환호작약했다. 하지만 조정에서는 도데체 무얼 했기에 일본수군이 133척을 몰고 왔는데도 고작 13척로 싸우게 했는지 사실부터가 잘못되었지만 과정이 최선이라서 천만다행이다.  

영화 '타이타닉'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으로 부터 102년 전인 1912년 '하란드 월프사'의 회장 피리 경에 의해 탄생된 타이타닉호. 굉장히 안전한 설계로 불침선이라는 명성에도 침몰하고 말았다. 대표적인 이유는 카이주라는 거대 빙산에 부딪혔기 때문인데 빙상 경고 무전을 받지 않았다는 점과 빙산 구역은 항해 속도를 저속해야 함에도 무시한 오점을 들었다. 

항해 중에 빙상과 추돌한 타이타닉호는 가까운 곳의 선박에게 구조요청으로 구명정을 동원하여 승객 2200여 명 중 710명만이 구조되고 빙산과 충돌한 지 2시간 40여분 만에 타이타닉호는 수직으로 물속으로 침몰하고 말았다. 이 사고는 당시로 최대 규모의 해상사고로 인하여 안전규제가 강화되었지만 과정이나 결과를 진실이라고 하기에는 미흡하다.

세월호 사고 및 구조사고는 2014년 4월 16일 오전에 전라남도 진도군 병풍도 부근에서 발생하였다. 이 사고로 탑승자 476명(잠정) 중 172명이 구조되고 304명이 사망·실종되었다. 사고 원인은 안개 탓도 있지만 과적을 우선순위로 뽑았다. 이 사실에 대하여 기사나 인터넷 자료가 방대하지만 결론을 내기까지는 발단부터 과정이 진행 중이라서 전반적인 진실은 더 기다려야 될 것 같다. 

원치 않은 성폭력에 의하여 자식을 낳아 길렀다면 죄의 씨앗을 기른 것인가? 흔히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하는데 죄는 사실이고 사람은 진실인가? 죄 지은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면 어떻게 죄를 물을 것인가.

인질범의 절박한 사연과 급박한 상황에 인질자도 어떻게든 살아야 하기에 시시각각으로 좁혀오는 위기에 동질감을 느껴서 동조하는 현상이 생긴다는데 인질범은 사실이고 인질은 진실인가. 사형수가 그린 그림을 예술지상주의 시각으로 보면 상당한 수준이어도 사형수라서 평가절하를 공감하면서도 진실과 위선의 평가는 어렵다. 

저녁에 아들 내외가 집에 와서 떡국 먹고 갈 때, 아내가 무엇인가 많이 챙겨주는 것 같아서 바리바리 싸간다고 떠들었다. 집에 둘만 남게 되자, 나더러 그렇게 미운 소리하면 다시는 아이들 안 오니까 그런 줄 알라고 멍꾸(핀잔)를 주었다. 그래도 싸 줄 것이 있어 지꺼지다(기쁘다)는 표현이 와전된 것이지만 사실과 진실의 차이를 관점에 따른다고 말문을 닫았다.   

역사적인 인물이나 과거 사건을 다시 회자하는 이유로는 현재의 필요 때문이지만 미흡한 사실과 진실은 밝히고자 하는 정의감으로 심도 있게 거듭 회자될 것이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