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범 제주도의회 농수축경제위원회 위원장

감귤산업은 1980년대 최고의 호황을 누리면서 '대학나무'라고 불렸다. 감귤농사를 하면 먹고사는 것을 넘어 자식 교육에도 모자람이 없었을 정도였다. 겨울철에 변변한 먹을거리가 없어서 맛과 상관없이 생산량이 농가소득과 직결되는 구조로 품질의 차별성을 인식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그러던 중 1990년대에 생산량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과잉생산이라는 용어가 나오기 시작했다. 가격하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적지 감귤원 폐원으로 4000여㏊가 감소하는 등 감귤산업이 하락세를 면치 못했지만 여전히 제주 농업의 근간을 이루며 3만1000호의 농가가 감귤을 재배하고 있다.

하지만 생산자가 중심이 됐던 '소비 1.0시대'에서 소비자가 중심이 되는 '소비 2.0시대'로 전환되면서 감귤산업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행정과 생산자는 소비자 욕구 충족을 위해 토양피복, 성목이식, 품종갱신 등 고품질 생산을 위한 사업과 풋귤 기준 마련 등 정책의 변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감귤정책의 일관성 부족과 생산자의 기대에 못 미치는 지원 한계 등으로 감귤정책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정책 추진의 한계에 부딪쳐 온 것이 사실이다. 

감귤농가들이 소비 2.0시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상황에서 소비 3.0시대를 맞고 있다. 소비 3.0시대는 혁신적인 유통과 상품의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는 스마트한 소비자 시대다. 고품질 감귤 생산뿐만 아니라 제주의 청정 환경에 대한 가치와 기능성, 물류 혁신 등 단순한 농산물에서 벗어나 점차 다양성을 띄고 있다. 반면 고령화와 인력난을 겪고 있는 농가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농업인 스스로 소비 3.0시대에 적응하는 것은 어렵다.

소비 3.0시대의 감귤산업은 농업인과 행정이 지속가능한 감귤산업, 경쟁력 있는 감귤산업 육성을 위한 동일한 목표를 설정하고 정책을 마련해서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보다 구체적으로 올 상반기에는 감귤정책을 대표하는 감귤조례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까지 필자가 수차례 문제제기를 한 사항으로 소비 2.0시대를 지나 소비 3.0시대를 맞는 현재도 여전히 크기를 기준으로 상품을 규정하고 있다. 하루빨리 당도를 중심으로 하는 품질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특히 한국·칠레 FTA 이후 여러 나라와 자유무역이 본격화 되면서 체리·석류·망고·블루베리 등 다양한 과일 수입이 증가하고 있는 데다 사과와 배, 딸기 등 국내산 과일도 고품질화 되는데 반해 감귤은 소비 1.0시대를 대표하는 크기 기준을 고집하고 있다. 크기에서 당도로 기준을 전환해야 농업인들의 재배방식도 다수확에서 고품질로 자연스럽게 바뀌고 감귤산업 경쟁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소비자의 선택기준인 맛을 품질기준에 넣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 반론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도입 시기에 대해서는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고 있다. 지금도 당도기준 적용이 늦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에 흐지부지 끝나버린 당도기준 병행적용 방안에 대한 논의가 너무 아쉬운 이유다.  

고품질 감귤생산의 목표는 맛이다. 고품질 감귤은 생산량이 많아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감귤 조수입이 9014억원이었던 지난 2013년 감귤 생산량은 67만2000t으로 평년보다 많았지만 사상 최대 조수입을 올렸다. 특히 토양피복 사업은 희망하는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지원을 확대하고, 당도기준의 품질기준을 적용하기 위한 소규모 광센서기 보급, 산지경매 시스템의 운영 보완 등 해야 할 것이 많다.  

다행히 농정에서 발 빠르게 설명회를 추진하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농가 의견을 충분히 정책에 반영하는 실천이 중요하다. 농업인들이 동의하는 감귤정책 실천을 통해 농업과 농촌이 나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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