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성 전 제주도의회 의장

정유년 새해가 밝았다. 흐르는 시간이야 변함이 없겠지만 정신만은 냉철한 반성과 새해 설계로 도전과 성취의 의지를 다짐해본다. 하지만 호가호위(狐假虎威)의 위세가 또다시 어떤 일들을 몰고와 세상을 뒤집어 놓을지 아침 신문을 대하기가 겁이 난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이 어쩌다가 비정상의 나락으로 추락하게 됐을까. 

혹자는 지도자 탓이라 하지만 그들에게 입지를 마련해준 국민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정신이 무너지면 물질도 질서도 무너진다. 정신을 바르게 세우는 것은 희망에 찬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 사회는 경제에 비해 국민정신 쇠퇴에는 방관적이다. 만사의 출발점은 사람이며 그 핵심은 정신이다. 학고창신(學古創新)의 자세로 정신을 바로 세우는 국민정신 개조 운동을 시대적  과제로  불태워 올려야한다. 

우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한다. 어느 절의 주지스님이 마당 한가운데 큰 원상을 그려놓고 동자승을 불러서 마을을 다녀왔을 때 "네가 이 원상 안에 있으면 오늘 하루 종일 굶을 것이며 원상 밖에 있으면 절에서 나가야 할 것이니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다. 동자승은 한참 고민하다가 마당 한 구석에 놓인 빗자루를 가지고 원상을 쓱쓱 쓸어 지워버렸다. 시간이 지나 스님이 돌아왔을 때 동자승은 하루 종일 굶을 필요도 없었고 절에서 내 쫓김을 당하지 않아도 됐다. 이제 우리를 가두는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 상대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간섭하게 만드는 물질과 권력, 명예의 원상을 동자승처럼 과감히 쓸어버려야 한다. 원상을  없애는 것은 고정관념의 울타리를 허물고 집착에서 벗어나 넓은 세계 먼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다. 

다음으로 탐욕을 경계해야한다. 오늘의 세태는 물질이 풍요로워졌지만 윤리도덕이 무너져 내리면서 험하고 거친 세상이 돼가고 있다. 욕망은 인생의 동력이지만 탐욕으로 흐르면 파멸로 이끈다. 그렇다면 그 끝은 어디일까. 알렉산더는 슬기로운 전술로 그리스와 이집트,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파키스탄과 인도까지 쳐들어가 드넓은 영토를 갖게됐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더 넓은 세계를 차지하려 했으나 부하들의 반대와 인도의 풍토병으로 쓰러지고 만다. 죽을 때 그는 "내 두 손을 모아 관 밖으로 내놓아라, 내가 빈 손으로 간다는 것을 모두가 볼 수 있게…" 우리 주변에도 어제까지 선망의 대상이던 자가 탐욕으로 패가망신한 인생이 얼마나 많은가. 탐욕의 끝은 이처럼 허망한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다. 

그리고 주인의식에 투철해야한다. 외국 어느 저명대학에 전해오는 일화다. 하루는 총장이 밤 12시 구내를 순시하는데 유독 방 하나에만 불이 켜 있고 한 학생이 나와서 중국인 화장실로 가더니 변기에 비누칠을 하면서 청소를 하는 것이었다. 감동적으로 바라보던 총장이 학생에게 물었다. "공부시간도 부족 할텐데 청소가 가능한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중국인 화장실이 가장 지저분하다는 것은 자존심과 명예를 훼손시키는 수치입니다. 저는 금년 1월 중국에서 온 유학생입니다만 앞으로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일 변소 청소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현대 중국의 국부 장개석 총통인 것이다. 진정한 주인의식이 어떤 것인가를 웅변하는 교훈인 것이다. 

끝으로 소통을 위한 지혜와 의식 전환이다. 옛말에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이라 했지만 지나친 불통은 자신의 주장이 옳으니 아무 말 말고 다들 따라오면 된다는 독불장군 식 사고인 반면 소통은 상대를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포용하는 민주주의적 사고방식인 것이다. 상대방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포용하는 소통의 질서를 세워야한다. 모든 것은 네 탓이 아닌 네 덕이라는 생각으로 함께 손잡고 어깨를 펴고 희망을 향해 비상하는 새해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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