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선 시인·논설위원

왜 그들이 떠오르는가. '블랙리스트'라는 이름 앞에서. 왜 한 번도 본 적 없는 우리의 삼촌들이, 왜 얼마 전 만났던 아흔둘 고내리 할머니가 떠오르는가. 4·3시기, 명부에 든 그 이름자 하나 때문에 잡혀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스물여덟 청춘의 교사 남편, "살당보면 잊는다고. 이제 70년이 가까와도 어떵 잊어" 그러시던 잿빛 눈망울의 그녀가 이제는 저 세상 간 봉개동 아흔 셋 할머니는 왜 떠오르는가. 여럿이 트럭에 실려간 뒷모습이 작별이었다고 울먹이던, 이름하여 예비검속 줄줄이 있다. 

얼마나 많은 이 땅의 사람들이 블랙리스트라는 누명을 쓴 채 죽어갔을까. 그로 인해 남편이 죽고 살아남은 어머니는 아이한테 함부로 애비의 이름을 부르지 말고 함구하라 했다. 오래도록 나는 왜 지금, 그들이 떠오르는가. 헌정사상 초유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라는 이름 앞에서 하필….

4·3시기, 명부 하나 들고 온 공권력의 호명은 곧 이승과 저승이었다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증언한다. 동명이인으로 호명되는 바람에 대신 감옥살이했던 '잘못 만난 시국'의 사람들, 야만의 시대, 4·3 연좌제를 당했던 이들도 바로 지난 시대의 블랙리스트다. 혹시나 낙인찍힌 채 살아갈까 영혼마저 정체모를 원형의 어둠에 떨던 이들이다. 4·3에 연루돼 일본으로 떠난 사람들 가운데 가명으로 살고 있다고 절규하던 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연좌제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제주사람들이었다. 

근데, 아니지 않은가. 지금이 어느 세상인가. 전쟁의 시대를 건너온 시대, 반전저항가수 밥 딜런에게, 인권을 기록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에게 노벨상을 헌정하는 이 시대에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라니. 문화융성을 부르짖는 문체부가 시대의 목소리를 낸 예술인들의 이름을 그리 몰래 몰래 품고 있었다니. 유신독재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천박한 유산, 이것은 풍문이 아니었다. 

"현 정부가 대한민국 역사를 30년 전으로 돌려놨다"고 비판한 사람은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었다. 특검은 실재한 블랙리스트 자체가 문화예술인들이 가장 우위에 둬야 할 표현의 자유를 훼손한 중대한 범죄행위임을 확인시켜주었다. 23일 현 정권의 김기춘 전 비서실장, 그러니까 영화 '자백'에서 모르쇠하던 그 얼굴이 블랙리스트 의혹의 주범이라며 구속됐고, 조윤선 문체부장관이 구속됐다. 이어서 문체부가 전부 나서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또한 초유의 일. 그러나 이것이 사죄로 그칠 일인가. 문체부가 얼마나 자기반성을 하고 있는지, 진정성을 갖고 책임을 묻고, 근본적 개혁을 세울 것인지 국민들은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

그리하여 냉철하게 분노한 법학자 이재승 교수는 집단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것을 제안했고, 이렇게 썼다. "한국에서 리스트는 취업을 방해하거나 정치인의 일상을 감시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았다. 6·25전쟁 중에 국민보도연맹원 학살이나 예비검속에 따른 민간인 학살도 명부가 그 출발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 관한 총괄적인 명부는 아직까지도 발견되지 않았다" 물론 예술인 블랙리스트들은 손배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맞았다. 촛불의 힘은 또 다른 힘을 낳고 또 낳고 있다. 그 힘은 그래도 진보의 길에 들어섰음을 일깨워준다. 또한 어차피 그리했으니 새 대통령은 정말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선택해야 할 것임을 말하고 있다. 요즘 잘 팔리는 책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김수현, 마음의 숲)가 있다. 이 시대, 나는 나로 살게할 자유를 찾기 위해 거리의 깨끗한 촛불은 끝까지 타오를 것이다. 

이제 설이다. 그럼에도, 나날들은 행복해야 한다. 역사의 블랙리스트로 사라진 이 땅의 삼촌들과 그들의 후손인 모두의 가슴에도 그리고 정의는 늘 가슴깊이 불꽃을 태우는 자들에게서 왔음을 잊지 말자. 행복도 그렇다. 얼음을 깨고 기어코 샛노란 복수초가 올라오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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