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편집부장 대우

달튼 트럼보(Dalton Trumbo, 1905~1976년). 미국의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다. 우리에겐 생소한 이름이지만 그는 오드리 햅번이 주연한 영화 '로마의 휴일'의 대본을 썼다. 이 영화로 그는 아카데미상을 수상한다. 이안 헌터라는 가짜 이름으로. 1950년대 미국에 불어닥친 매카시즘에 의해 공산당원로 낙인찍힌 그는 생계를 위해 필명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후에 그는 아카데미위원회로부터 트로피를 받고 명예도 회복한다(영화 '트럼보'). 

문화예술인 지원 배제 명단, 일명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혐의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21일 새벽 동시에 구속됐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블랙리스트가 최근 실체를 드러내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됐던 시인 고은, 「채식주의자」로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도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세월호 참사 관련 책을 출판한 창비·문학동네 등 유명 출판사들도 포함돼 있다.

또 영화감독 박찬욱, 배우 송강호 등도 있다. 제주 문화예술인도 예외가 아니다. 「순이 삼촌」의 소설가 현기영, 민중미술가 강요배 화백 이름도 있다. 특검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대응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 명단을 모아 문체부에 내려보낸 것이 블랙리스트의 시작이었다.

초기에 수백명 수준이었던 명단은 확장을 거듭하면서 1만여명에 육박하게 됐다. 리스트에는 세월호 참사 관련 시국선언에 참여한 인사,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 인사,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지지선언 인사 등이 대거 들어있다고 한다. 문체부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화예술인들의 지원을 축소하거나 우수 저작 선정 사업에 의도적으로 제외하는 등 불이익을 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사상의 자유,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중대한 범법행위이고 시대착오적인 권력남용이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3년 출범 당시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을 국정 운영의 3대 축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 요즘 이 말에 공감하는 국민들이 있을까. 그동안 정부의 행태는 문화융성이 아니라 문화농단이고 문화계 길들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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