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남 사회부차장 대우

조선시대 지방에 살고 있는 백성의 입장에서는 수령의 권한이 왕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수령의 성정이 고을 백성의 삶은 물론 생사를 좌우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수령에 백성의 평가는 임기를 마친 후에야 제대로 이뤄졌다. 선정을 베푼 수령이 떠날 때 백성들은 섭섭함을 표시하고 공적을 칭송했다.

떠나가는 수령을 칭송하는 수단은 송덕비(頌德碑)·선정비(善政碑)·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유애비(遺愛碑) 등의 비석과 만인산(萬人傘, 일종의 양산)·만인병(萬人屛,병풍)이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초산부사(1878~1879년)를 지낸 이만기의 만인산에는 선정을 베푼 내용과 2091명에 달하는 백성의 이름이 촘촘히 수놓아져 있다. 

하지만 수령을 칭송하는 비석과 만인산 등은 선정의 결과일수도, 그 반대의 상황일수도 있다. 1896년 고종실록에는 희천군수 경광국을 고발하는 상소문이 실려 있다. '남의 재물을 약탈하여 욕심을 채우는 것을 능사로 여긴다'며 죄상을 나열하고는 '2000금을 포학하게 거두어 만인산을 억지로 수놓게 하니 원망하는 소리가 길에 가득 찼다.

포악한 수령일수록 크고 화려한 만인산과 송덕비를 요구하면서 가뜩이나 궁핍한 백성들은 더 고통에 시달리는 상황도 속출했다.

2006년 7월 1일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제주도지사를 빗대어 '제왕적 도지사'라는 말이 나왔다. 기초자치단체가 폐지되면서 모든 권한이 제주도지사에 집중되면서 타 광역단체장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강한 파워를 가졌기 때문에서다. 과거 수령의 가진 권한보다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모자람이 없다. 

원희룡 지사가 31일 다가오는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표면적으로는 초선 도지사로서 제주현안 해결에 집중하겠다는 이유지만, 1% 안팎에 머물고 있는 지지율을 끌어올린 마땅한 방안이 없는 현 시점에서 도지사 재선에 나서는 것이 실익이 더 크다는 판단을 내린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제주도민이 원 지사에 씌워줄 만인산이 이만기의 그것인지, 경광국의 그것인지는 2018년 6월 실시되는 전국지방선거에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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