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미 부국장대우·문화부

'힘든 사람들에게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를 내건 경연 프로그램이 막을 내렸다. 처음은 실력파들이 만들어내는 화음에 위로를 받았다. '힘든'의 의미는 조금 늦게 다가왔다. 적어도 '음악'이라는 재주를 가진 이들이라 크게 어려울 것이란 생각을 한 것은 오판이었다. 최소한 3등이라는 부담 덜한 무대에서 한 참가자가 울먹이며 털어낸 소감이 그랬다. '모교 무대'라는 말에 옛날 생각이나 하나 보다 했던 것은 잠시, 그의 입에서 예상 외의 말이 나왔다. "한 번도 이 무대에서 주연을 맡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더 열심히 노력했다. 힘들여 유학까지 다녀왔는데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나를 어떻게 알려야 하는지 정말 막막했다. 1등을 하지는 못했지만 이런 기회가 있어서 내게는 행운이다"

먹먹했다. 학교에서는 늘 1, 2위를 다투던 성악과 동기들의 고백도 비슷했다. "막상 졸업을 앞두고 보니 뭘 해야 할지 보이지가 않더라, 그래서 다른 일이라도 해볼까 고민했다". 노래가 너무하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던 젊은 연극인의 사연도 절절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싶어서 독학으로 성악을 공부했다. 실력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알고 싶어서 성악대회에 나갔는데 덜컥 우승을 했다. 그래도 전공자가 아니다 보니 기회가 없었다. 정말 노래가 하고 싶었다"

사연을 골라 참가자를 선정할 것도 아닌데 유독 이런 얘기들이 가슴에 닿는 이유는 '공감'에서 찾을 수 있다. 가뜩이나 먹고 살기 힘든 상황에 청춘은 그렇게 대단한 훈장이 되지 못하는 현실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줄곧 "꿈을 가져라"는 말을 들었지만 막상 현실 앞에서 그만큼 거추장스러운 것은 없게 되는 사정이 다름 아닌 '청춘'이다. 

안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말장난 같은 분석 속에서 제주에는 아직 공식 '청년실업 통계'가 없다. 통계청 기준으로 보면 지난해 제주 평균 청년실업률은 5%대로 전국 평균 9.8%와는 차이가 크다. 중요한 것은 누구도 믿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니 믿기 어렵다. 미래창조부가 니트족·임시직을 포함하자 34%로 치솟았다는 얘기가 더 실감난다. 때마침 제주도가 청년문제를 진단하고 정책수요 파악을 위한 용역에 들어갔다. 일단 거창하다. 실태조사를 통해 지역특성을 반영한 청년정책 비전과 목표, 중·단기 추진전략, 거버넌스 구축 등을 포함한 5개년 사업(2018~2022년)을 세운다는 것이 기본 골자다.

뭐든 시작했으니 지켜볼 일이지만 과연 청년들이 바라는 것인가. 청년들도 안다. 고령화로 비중이 커지고 있는 노인도 그렇지만 청년만을 위한 나라는 없다. '청년'이 처한 환경이 제각각인데 이를 계량화해 정책을 만드는 것은 시작부터 한계다. 사회가 바뀌지 않으면 무엇을 하던 계속해서 빈틈과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경연 프로그램 마지막 축하의 말이 쏟아지던 사이 한 심사위원이 이런 말을 했다. "반성을 많이 했다. 우리는 아직 이들을 위한 영역을 만들어주지 못했다. 우리말로 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해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청년들에게 현실의 장벽은 여전히 높다. 사회에 나서는 순간 '걸음마'수준으로 회귀하게 되지만 '성인'이라는 이름으로 책임을 요구한다. 숙제라도 하듯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것은 '안정성'보다는 어쩌면 공정한 경쟁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남녀평등이 양성평등으로, 다시 성인지로 바뀌게 된 배경에는 차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목적한 것은 같다. 다만 남과 여를 구분하는 양분법을, '양성'이라는 미시적 관점에서 돌려 접근하다 다시 성인지라는 거시적 시선에서 보게 된 것이다.

노파심이지만 정책이란 것이 습관처럼 '기준'(형평성)을 요구한다. 환경적응력도 떨어진다(경직성). 청년정책이 또다른 굴레나 장애가 될 수도 있다. 일단 시작한 일이다.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더라도 '판'은 깨지 말자. 끝은 이렇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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