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규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

시대가 변하고 있다. 낡고 오래된 것이 가차 없이 버려지던 시대에서 매력적이고 탐나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우리는 놀라운 변화를 겪고 있다. 너무 오래되고 흔해서 버려졌던 낡은 민가나 돌창고가 새로운 감성을 더해 인기 있는 관광지가 되고, 이로 인해 평화롭던 시골마을에는 관광객들이 감당할 수 없게 넘쳐나곤 한다. 단순한 개인의 노스탤지어(향수, Nostalgia), 그리움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큰 변화이다.  

사실 낡고 오래됐다고 모든 것이 버려지는 것은 아니다. 오래된 것들 중에서도 국가가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문화재라는 이름으로 대우받고 보살핌을 받는다. 그러나 유리벽 넘어 박제된 문화재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그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곤 한다. "왜 일까?" 이 질문에 대답은 아마도 문화재가 우리의 삶과 유리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금의 변화는 오히려 오래된 것들의 가치를 인정하는 권력의 주체가 국가나 관이 아닌 개인들에게로 옮겨져 왔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역의 정체성이라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변화는 젠트리피케이션(고급 주택화, Gentrification)이라는 부작용을 낳는다.

도시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낡아 원래의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게 된다. 제주의 원도심도 그 기능을 수복하기 위한 재생의 방향과 방식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도시재생은 국가의 돈으로 개인이 낡은 도시를 마음대로 젊게 만드는 사업도 그렇다고 문화재처럼 국가에 선택을 받아 보살핌을 받게 되는 사업도 더더욱 아니다. 도시재생은 오래된 것을 찾아 다양한 감성을 지닌 개인들의 민주적 절차를 통해 가치를 재인정받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도시재생에서 주민이 배제되거나 주민의 삶과 기억이 유리돼서는 안되며, 도시의 정체성은 간과한 채 사적 이익만 추구돼서도 안 되는 이유이다. 

제주 원도심에는 수많은 오래된 것들이 존재한다. 그중에 '올레'가 있다. 올레는 제주어로 거리에서 대문으로 통하는 좁은 길을 의미하며 동시에 한동네의 몇 집이 한 골목이나 한 이웃으로 사는 구역 안을 의미하기도 한다. 주민들의 오랜 생활과 기억을 담아온 제주 마을의 흔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도시재생의 관점에서 올레는 오래됐지만 가치 있는 훌륭한 자산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췄다. 

그러나 근대 산업화와 최근의 부동산 광풍까지 더해지면서 제주 원도심의 올레는 생채기가 나고 있다. 큰 도로가 생기면서 올레는 허리가 잘려나가고 올렛담은 자동차 출입을 위해 훼손되고 있다. 나지막한 민가는 고층의 다세대나 다가구 건물들로 대체되고 있다. 올레는 당초 보행로와 차도로 구분되는 근대 도시계획의 도로와는 근본부터 다르다. '이동'이 아닌 '과정'을 중시하기에 속도나 토지 이용의 효율성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오히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집, 집과 마을의 위계와 관계를 중요시 하는 생활을 담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도시재생을 논의하면서 결이 다른 근대의 획일적인 도시체계가 강요되는 상황은 없어야 할 것이다. 오히려 제주 원도심과 올레가 지난 공간 가치를 유지하면서 지속가능한 개발 방식이 모색돼야 할 것이다.

올레와 오래된 필지의 원형을 보전하면서 순차적 개발을 유도할 수 있는 '제주형 건축협정(마을단위 소규모 정비)제도'의 적용기준 마련은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중국의 사상가 양계초는 '신밀설'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이 등대가 돼 현실의 행위를 인도한다"라고 이야기한다. 도시재생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왔던 흔적이 현재의 우리에게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는 일인지 모른다. 그리고 또 다른 과거가 돼버린 새해 첫날, 우리 자손들에게 과거로 기억될 오늘의 도시 모습에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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