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휴 전 초등학교 교장·논설위원

요즘 나는 치매에 걸린 것 같다. 작은 일에도 안절부절 못하고 한숨이 나온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에 화가 버럭 솟아오른다. 들은 말 잊어버리고 내가 했다는 말도 기억이 없다. 아무래도 내 정신상태가 심상치 않다. 여러 해 동안 제자들과 날짜를 정해 만나던 모임에도 올해는 빠져버렸다. 

떠나보낸 제자들이나 시집장가 간 아들딸들도 나는 사랑한다고 했는데, 그들 눈에는 많이 모자랐는지도 모른다. 따뜻한 사랑과 설득으로 이끌어줬더라면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는데도 그러지 못한 경우가 있었을 것 같다. 미안한 생각이 든다.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치매일까, 우울증일까. 지난날을 돌아보는 마음으로, 몇 번씩 읽고 또 읽은 이야기를 다시 읽어본다. 

미국의 어느 중학교. 말이 많은 마크 때문에 수업은 엉망이 되곤 했다. 선생님은 궁리 끝에 종이 한 장씩을 나눠주면서 친구들의 장점을 하나씩 적어서 내라고 시켰다. 40명 학생들이 적어서 낸 '장점리스트'를 밤새 옮겨 적고 다음날 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 모두들 기뻐하길 바랐는데 학생들은 조용히 읽으면서 아무 말이 없었다. '실패했나?' 생각하면서도 선생님은 이 일을 잊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베트남 전쟁에서 마크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선생님은 슬픈 마음으로 제자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런데 마크의 어머니가 아들의 지갑 속에서 나온 것이라며 빛바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거 선생님 글씨 맞지요?" 반 학생들이 써낸 칭찬을 모아 옮겨준 그 글. 마크는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20여 년 전 써 준 그 칭찬 글을 보물처럼 가슴에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곁에 있던 한 제자가 말했다. "선생님, 실은 저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자 다른 제자들도 하나둘 꺼내 보였다. "마크도 저희와 같은 생각을 했을 거예요. 선생님께 이 종이를 받기 전까지는 저에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그런데 친구들이 저의 장점을 찾아주었지요. 그건 정말 커다란 기쁨이고 행복이었어요. 괴롭고 힘들 때마다 이 종이를 보면서 용기를 얻었답니다"(「힘들 땐 그냥 울어」 중에서)

그렇다고 내가 교사시절을 게으르거나 크게 잘못 가르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제대로 잘 가르칠 욕심으로 교과서 여백이 까매지도록 메모를 하곤 했지만, 그래도 충분하지는 못했다. 당시에는 보충자료가 너무 모자랐다. 교재연구를 하느라고 가방 속에 교과서와 참고서를 잔뜩 넣고 다녔지만, 공치는 날도 많았다. 젊은 교사시절, 시간이 아까워서 40세까지는 바둑·장기·화투·당구 등 '시간 먹는 잡기(雜技)'에 손대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기억도 난다. 그래서 지금 내가 옹졸해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내 나름으로는 모든 제자들에게 공평하느라고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이 부분은 정말 자신이 없다. 

공부에 좀 뒤처지거나 친구들과 어울림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 제자에게 좀 더 따뜻하게 대해줄 수도 있었는데, 나의 보살핌이 뜨뜻미지근했던 건 아니었는지 부끄럽다. 더 자주 손을 잡아주고 더 많이 들어줬더라면 분발할 수 있었던 제자가 있었는데도 내 눈과 귀가 어두웠던 것은 아닌지….

또 하나. 모든 제자들에게 장래희망과 진로에 대해서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지 못한 게 정말 아쉽다. 서점을 들락거리며 책을 많이 읽노라고 했지만, 그래도 나의 좁은 안목은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자료가 부족했다는 말은 변명밖에 안 된다. 나는 부끄럽다. 좀 더 많이 칭찬해주고 더 많이 북돋워주지 못한 게 아쉽고 안타깝다. 지금 제자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제자들과 헤어진 뒤에 부디 나처럼 뉘우치는 일이 없기를, 그들 모두의 가슴에 평생 지워지지 않은 사랑과 자신감을 심어주는 선생님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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