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만석 ㈔미래발전전략연구원장·법학박사

최근 제주의 화두는 주거, 교통, 쓰레기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다. 천정부지로 뛰는 부동산 가격, 러시아워가 따로 없는 도로 정체, 클린하우스에 넘치는 쓰레기 등 제주의 현안은 당장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청정과 공존이라는 제주 미래비전은 공허한 말잔치로 끝날 수도 있다. '청정'은 쓰레기와 매연, 처리 용량을 넘은 오·폐수 등에 의해 본래의 의미를 벗어나 오염됐다. '공존' 또한 사회 양극화, 대형 개발을 둘러싼 갈등, 관광객 및 이주민과의 융화 문제 등으로 위협받고 있다. 더구나 압도적인 인구당 범죄발생률(10만명당 5739건) 전국 1위는 '공존'의 가치를 넘어 관광 제주의 핵심인 '안전'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시스템을 개조해야 한다. 최근의 쓰레기 요일별 배출제에서 드러난 갈등의 핵심은 행정이 주민의 의식을 강제하는 데 있다. 문제의 해법은 주민의 인식 개선 이전에 시스템의 변화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생활쓰레기의 배출량을 줄이고 재활용률을 제고하려면 먼저 배출량을 줄이고 재활용률을 높일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구비해야 한다. 클린하우스 자체를 하우스화해서 카드를 찍고 출입할 수 있도록 한다든지, 재활용품은 별도로 처리하는 시스템을 도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파트 단지의 경우 부녀회 위주로 단지 내 재활용품 수거를 통해 수익을 얻기도 하는 것처럼, 각 동별 협의체에서 재활용품을 수거해 재활용률을 높이고 인센티브를 얻는 방안을 강구할 수도 있다. 

시스템이 변화하면 범죄 발생도 줄일 수 있다.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인 마포구 염리동은 서울시가 2012년 범죄예방디자인(CPTED)을 적용한 뒤 범죄 발생률을 크게 낮출 수 있었다. 무섭던 골목길은 '소금길'이라는 이름의 운동코스로 변신했고, 전봇대마다 번호가 달려 주요 지점에 신체부위별 운동을 할 수 있도록 기구와 안내판이 설치됐다. 마을에 조명과 감시카메라와 비상벨을 갖춘 지킴이집을 배치하는 시스템의 변화는 주민들의 불안을 덜어주었고, 이는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졌다. 강북구 미아동도 태양광 충전식 발광장치인 쏠라표지병을 바닥에 설치해 어두운 밤길을 밝힘으로써 주민 불안을 해소하고 범죄예방의 효과도 누릴 수 있었다. 

제주는 '카본 프리 아일랜드 2030'을 추진하고 있다. 그 방안으로 화석연료 자동차를 전기자동차로 대체하고, 해상과 육상 풍력발전소를 설립하고 있다. 그러나 전기자동차의 대체율은 생각보다 저조하고, 풍력발전소는 소음과 환경 영향 등으로 추가 건설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이제는 시스템의 전환을 고려해야 한다. 지난 여름 폭염에 따른 누진제의 부담으로 태양광 발전을 설치하는 가정이 크게 늘고 있지만, 제주는 아직 태양광 발전이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태양광 발전은 전기요금 절감뿐만 아니라 청정 제주의 이미지를 효율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에너지원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시스템의 전환을 위해 우선 버스정류장과 공공건축물에 태양광 판넬을 설치하고, 공공디자인을 덧입히는 시스템을 구비해야 할 것이다. 이후 제주의 특색을 살리면서 디자인을 다양화하고, 신축하는 건물에는 의무적으로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태양광 패널에 대한 보조금 지급과 잉여 전력에 대한 우선구매제도 등 정책적 지원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제주는 압축성장 시기를 지나고 있다. 그러나 성장에만 방점이 찍힌다면 그 후유증은 제주의 미래를 암울하게 할 것이다. 매년 되풀이 되는 각종 사고의 원인은 으레 인재(人災)이고, 사람에 의해 움직이는 후진적인 사회 시스템은 효과적인 대응을 어렵게 한다. 이제 제주 구성원들의 마음을 시스템을 통해 모아야 한다. 시스템의 개조가 결국 각종 현안의 해결과 미래를 담보하는 길이고, 제주를 제주답게 가꿔나갈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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