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근 전 한마음병원장, 논설위원

지난 연말에 필자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겨져 추진했던 요양병원이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드디어 문을 열었다. 광고를 할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없었음에도 여기저기서 소문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 줘서 성대하게 개원식을 치를 수 있었다. 그동안 관심을 갖고 도와준 모든 사람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마운 말씀을 드린다.

그런데 이 고마움에 조금이나마 보답하자는 마음에서 요양병원 개원식 때에 협찬해준 쌀과 축의금을 사회적 도움이 필요한 곳들에 나눠준 것이 몇몇 언론에 보도되자 여기저기서 자기네들도 도와 달라는 부탁의 전화가 빗발쳤다. 한 기관에서 두어 차례 전화가 오는가 하면 심지어 서울에 있는 기관에서도 연락이 왔다. 나름대로 안타까운 사연이 있겠지만, 이처럼 언론에 보도된 곳에 집중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1979년에 고향에 내려온 후 내 나름대로 고향을 위해 뜻있는 일에 동참하기 시작한 후 여러 직책을 맡다보니 이리저리 후원금 내지 기부금을 받기 위해 많은 분들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에 언론에 보도된 독지가의 기부 소식은 나도 도움을 청해 볼까 하는 유혹을 일으키곤 했다. 그러나 몇 차례 기부 후 쏟아진 주위의 기부 요청에 진땀을 뺀 이후로는 이런 유혹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후원을 받는 것은 포교활동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의 행동으로 주위 사람들이 도와줘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지역에는 큰 기업이 없지만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이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많다. 하고 있는 봉사활동의 취지와 성과를 잘 설명하면 후원금을 모집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어린이재단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는 5년 이내에 1억 원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하는 분들을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으로 모시고 있다. 2017년 1월 현재 전국적으로 1400명이 조금 넘는데 큰 기업이라고는 별로 없는 제주도 회원이 64명이나 된다. 인구로 따지면 겨우 1.2%인 제주도민이 아너스 클럽 회원 중 5% 정도를 차지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어린이재단에서는 30년 이상 계속 후원해준 사람들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는데 그 중 6% 정도가 제주도민들이다. 이 역시 자랑할 만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또 2005년에 제주도를 끔찍이 사랑했던 사진작가 고 김영갑 선생께서 바람을 주제로 사진집을 내고 싶었으나 돈이 없어 못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발간비 중 모자라는 1000만원을 목표로 모금을 하면서 한 사람 당 5만원을 예정하고 240명에게 부탁하는 편지를 보냈는데(편지를 받았다고 모두가 응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돼) 4800만원이나 모여 모두들 깜짝 놀랐다.

흔히 자선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도록 하라고 한다. 그러나 자선 활동도 다른 사람들을 자선 활동에 동참시키기 위해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가까운 예로 지난 12월에 행사가 있어 고향을 방문했던 고향 출신 기업가가 고향에서 자그마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 아너스 클럽에 가입했다는 얘기를 듣고 서울로 가자마자 부부가 함께 아너스 클럽에 가입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언론에 보도된 선행을 읽고 많은 단체에서 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그 분의 선행의지(善行意志)를 꺾는다는 점에서 삼가야 한다고 여겨진다.

우리 고장에는 남을 위해서 봉사하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예상보다 많다. 이런 사람들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도록 하는 것은 봉사단체의 몫이다. 각 봉사단체들이 자기만의 특색을 살리면서 주위 사람들을 봉사의 대열에 합류시킨다면 더욱 살기 좋은 고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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