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편집국장

전국 어느 지역마다 대표 축제나 문화행사가 있다. 이들은 오랜기간 주민의 삶과 열정, 지역특성을 고스란히 담아내면서 경쟁력 있는 문화관광자원으로 평가된다. 제주의 탐라문화제나 국제관악제도 다른 지역에서 쉽게 흉내낼 수 없는 행사로 자리하고 있다. 

국내 3대 문화제의 하나인 탐라문화제의 역사는 참으로 길다. 1962년 순수예술제인 '제주예술제'로 시작해 1965년 한라문화제로, 이후 2002년 다시 탐라문화제로 이름을 바꿔 지금에 이르고 있다. 

탐라문화제는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한해도 쉬지 않고 열리면서 제주를 대표하는 전통문화 축제로 자리매김해 왔다. 탐라문화제를 통해 도내 각 읍·면·동에 민속보존회가 조직돼 전통문화 전승 기반을 구축하고 민속예술 경연대회에서 발굴된 민요들은 무형문화재로 지정, 보존 전승되고 있기도 하다.

제주국제관악제 역시 짧지않은 역사를 자랑한다. 1995년 '관악의 섬' 제주에서 토박이 관악인들의 열정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국제관악제는 우리나라에서 세계에 내세울만한 변변한 음악축제 하나 없던 당시 독보적인 존재였다. 제주국제관악제는 이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축제로 해외에서 더 인정하는 세계적 관악인들의 향연으로 자리잡고 있다. 

탐라문화제나 제주국제관악제는 해를 거듭하면서 경쟁력을 강화한 결과 제주를 대표하는 문화축제로 손색이 없다. 이는 단지 기간이 오래돼서만은 아니다. 수십년 세월동안 그 안에 담고 쌓아온 제주만의 색깔과 정서, 도민들의 자부심 등이 모여 '대표 축제'라는 이름을 얻어냈다.   
그런데 이 문화축제들의 위상이 흔들릴 위기에 처했다. 지역성을 감안하지 않은 정부의 예산편성 운영기준으로 제주 대표 문화축제가 자본력이 강한 타지역 기획사에 의해 치러지는 모순이 우려되고 있다.  

행정자치부는 축제나 행사에 대한 선심성·낭비성 예산 지원을 규제하기 위해 총액한도제를 시행, 사업비가 3억3000만원을 넘는 축제나 행사는 전국 공모를 통해 주관단체를 선정토록 했다. 예산이 각각 12억원과 11억3000만원인 탐라문화제와 제주국제관악제가 이에 해당하는 것은 물론이다. 

제주의 향토문화 계승과 발전을 위한 지역 전통문화축제로 56년간 개최해온 탐라문화제나 민간 주도로 20년이 넘게 행사를 치러온 제주국제관악제가 전국규모의 대형기획사에 넘어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대규모 행사에 대한 경험이나 기획력 등을 볼 때 지역 단체 등이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오는 5월 제주에서 열리는 제2회 UCLG 세계문화정상회의를 전국공모한 결과 지역 참여는 컨소시엄 형태로 10%에 그쳤다. 또 오는 7~10월 개최되는 제주비엔날레 역시 도내에서는 참여 조건을 맞추기 어려운 상황이다. 

축제나 행사에 대한 지자체의 무분별한 예산 낭비를 막겠다는 정부의 의도는 이해한다. 그렇다고 해도 지역축제의 특성을 무시하고 전국적으로 획일적인 기준을 강요하는 것은 안된다. 이같은 방침으로 지역 문화예산이 지역의 문화 경쟁력을 키우는데 쓰이지 못하고 타지역 대형기획사의 배만 불릴 수 있다. 또 화려하고 뛰어난 기획력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오랜기간 쌓아온 지역색은 사라지고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일회용이나 이벤트성 문화축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이 있듯이 지역문화는 지역이라는 제약도 있지만 지역이기 때문에 더욱 독특하고 창의적이다. 지역마다 특색있는 문화축제를 육성하고자 노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정부의 문화축제 전국공모로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설 자리가 더욱 좁아지는 것은 물론 자칫 지역문화의 획일화로 정체성과 경쟁력 상실이라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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