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수 이중섭미술관 명예관장, 논설위원

지난 1월 24일 국회 의원회관 1층 로비에서 열린 '곧, 굿바이'전에 출품된 한 젊은 화가의 '더러운 잠'이 여성 국회의원들의 강렬한 항의를 받는 소동이 벌어졌다. 민주당의 표창원 의원이 주도한 이 전시는 대선 후보인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에 의해 먼저 유감 표시가 있은 뒤 한 60대 남성에 의해 그림이 떼어져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해프닝이 있었다. 이어 수십 명의 보수단체 소속의 회원들이 몰려와 그림을 박살 냈다는 뉴스다. 이상은 신문에 나온 기사를 요약한 것이다. 

뉴스 시간에 화면에 비친 그림인즉슨 19세기 프랑스 화가 마네가 그린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것이었다. 원작에 나온 나체의 여인 얼굴에 박근혜 대통령을, 흑인 하녀의 얼굴을 최순실로 합성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표 의원은 당내 윤리위원회에 회부됐고 민주당을 제외한 각 당의 여성의원이 일제히 비난 성명을 냈다. 이들은 "우리는 박 대통령을 옹호하는 게 아니라 여성성을 모독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여성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성적 비하한 데 대해 최소한의 상식마저 저버린 것이었다고 분개했다. 

이 사건을 보면서 묘한 감회에 젖었다. 마네의 '올랭피아'가 프랑스의 관전인 살롱전에 출품된 것이 1865년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한 170년 전쯤이 된다. 이 작품은 전시되자마자 격렬한 항의 소동에 온 나라가 몸살을 앓았다. 연일 저널리즘은 혹평을 쏟아냈으며 전시장에 몰려온 흥분한 군중들을 막기 위해 그림 앞에 세 사람의 경비를 세우는 난리를 피웠다. 천박하기 짝이 없다느니, 노란 뱃가죽의 창녀라느니 하는 욕을 퍼붓는 것은 물론이고 우산이나 지팡이로 작품을 후려갈기려는 사람들 때문에 사람 손이 닿지 않는 문 위 높은 곳으로 옮겨놨다.

그림의 작가인 마네는 이 사건을 계기로 잠시 스페인으로 망명 아닌 망명을 떠났던 사실을 떠올려 보면서 무려 170년이나 지난 오늘에 와서 다시 한번 곤욕을 치르는 상황을 보면서 쓴웃음이 절로 나왔기 때문이다. 작품이 가진 애꿎은 운명이라도 있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올랭피아'가 심한 스캔들에 휘말린 원인도 너무 외설적이었다는 점이고 '더러운 잠' 역시 여성 비하 또는 여성 모독이란 점에서 두 작품이 일치되는 것 같다. 미술사에 '올랭피아'보다 더 큰 스캔들도 없었다고 기술되고 있는 사실에 비해 '더러운 잠'이 한갓 한 시대 정치적인 구설수로 끝나버렸다는 데서 차이라면 차이를 보였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올랭피아'의 스캔들이 마네를 단연 스타덤에 올려놓았을 뿐 아니라 미술사에 획기적인 변혁의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데서 이 사건은 어디에도 비유될 수 없는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올랭피아'는 현재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전시되고 있다. 

가끔 이 미술관에 들르게 되면 나도 모르게 이 작품 앞에서 왜 당대의 사람들은 그렇게 소동을 피웠을까 하고 의아해한다. 시대적인 미의식의 차이란 것이 실감되면서도 너무 심하지 않았나 생각하면서 말이다. 

정작 이 작품이 문제가 된 요인은 단순히 외설적인데 있었다기보다는 지금까지 보아온 길들여진 회화의 틀을 벗어난 데 있다는 것이다. 선열한 색채와 평면적인 수법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가히 혁명적이라 할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신화에서만 다뤄지던 여성 나체가 현실의 인물로 대체됐다는 점에서였다. 

신화나 역사에서 찾아진 주제가 비속한 현실의 모델로 옮겨온 데 대한 당황감도 참을 수 없었다면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대담한 수법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점이 젊은 화가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데서 미술사적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마네의 주변엔 새로운 것을 열망하는 젊은 화가들, 피사로, 모네, 시슬레, 르누아르, 세잔, 드가 등이 몰려들었다. 마네는 이들을 이끌어가는 선배이자 리더로서 선망의 대상이 됐다. 마네를 중심으로 한 이들의 정기적인 모임은 19세기 후반을 주도하는 인상파의 시발이 됐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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