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오경 한의사

한의원에서는 '기막힌'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여기서 기막힘은 어이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체의 부자연스러운 상태, '기체(氣滯)'를 말한다. 위장, 심장, 어깨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다가 기운이 편히 돌지 못하면, 소화가 안 되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어깨가 무거워진다. 그런데 이런 사람일수록 커피를 참 많이 마신다. 한의학적으로 커피의 쓴 맛(苦味)은 흐트러진 기운을 내려(降逆) 일시의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기운을 내리는 것보다 순조롭게 하는 '귤피차'를 추천하고 싶다. 커피도 좋은 면이 많다. 침과 점액의 분비를 촉진시키고 간의 효소를 자극하며 노폐물을 배출하는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과다하게 마시면 결과는 좋지 않다. 커피를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정신이 말끔해지는데 인체의 여러 호르몬을 분비하는 부신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자극이 과도하면 부신기능이 약해져 호르몬이 알맞게 분비가 안되고 오히려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다. 특히 불면증이 생기고 아침에 몸이 무겁게 느껴지게 된다. 이럴 때 커피를 마시게 되면 악순환의 시작인 것이다. 또한 이미 위장관이 손상이 있는 경우 점막을 자극하고 위액이 식도로 역류하게 돼 위염과 식도염을 악화시키고 대장에서 연동작용이 촉진돼 설사, 복통이 심해진다. 

귤껍질을 말린 것을 한약재로 진피(陳皮)라고 한다. 기운을 순조롭게 하고 비위기능을 높여주는 대표적인 약재이다. 

동의보감에서는 비, 위, 폐의 기운을 잘 통하게 하고 기병(氣病)을 두루 치료하는 약재로 쓰였다. 현대에 와서 지방흡수를 억제해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고 비타민을 많이 함유해 피로회복과 피부에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성미가 따뜻하고 달아서 누구나 차로 먹기에 무난하다. 오늘부터 겨울내 까먹고 남은 귤껍질로 귤피차를 마셔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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