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영 조세정의네트워크 동북아챕터 대표, 논설위원

20세기 경영의 그루로 명성이 높았던 필자의 은사 피터 드러커의 지적 유산은 고인의 사후에도 여전히 성가가 높다. 필자는 그가 남긴 수많은 통찰 가운데서도 다음의 질문을 우선 꼽고 싶다. "우리의 본업이 무엇인가" "고객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고객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글로벌 경영환경의 격변 속에서도 이 질문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생존을 넘어 혁신을 통한 번영을 쫓는 경영자들은 업종에 관계없이 여전히 자신들이 고객 경험(Customer experience) 비즈니스에 종사하고 있다는 사실에 유념하고 있다. 

기술 발달에 따라 소비자는 상품과 서비스 선택 방법과 구매 장소에 관한 한 결정권이 전례없이 커지고 있다. 애플이나 아마존같은 고객 친화적인 글로벌 리더들은 고객 기대수준을 날마다 끌어올리고 있기도 하다. 시장에 내놓는 상품과 서비스 자체 만큼이나 소비의 접점을 만들어 내는 방식이 기업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 역시 익숙하게 지적되고 있다.

그런데 기업 활동이 이뤄지는 프라이빗 섹터에서만이 아니라 행정과 공공 서비스가 펼쳐지는 퍼블릭 섹터에서도 최종 소비자의 경험 즉, 시민 경험(Citizen experience)은 제도의 성패를 가를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다시 말하자면, 공공 부문이 명시된 사명 달성 가능성과 예산집행 효율성 그리고 시민 서비스 우선 문화를 증진시키는데 그간 프라이빗 섹터가 큰 진전을 거둔 바 있는 고객 경험 개선 노력이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우선 고객 경험 제고 프로그램의 성패는 이른바 고객여정(Customer journey)의 확인과 이해 그리고 통달이 가능한지에 달려있다. 고객여정은 특정 조직과 관계하는 고객이 구매의사 자각에서 구매후 최종 평가에 이르기까지 경험하는 전 과정을 말한다. 고객 경험을 선도하는 기업들은 상품과 서비스 그리고 상품과 서비스 구매행위가 이뤄지는 모든 채널에 걸쳐서 고객여정을 개선하는 일에 전념한다. 공공부문 역시 시민 경험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공공 서비스 프로그램과 그 집행 채널 전반에 걸쳐 이뤄지는 시민 여정(Citizen journey)에 시선을 둘 필요가 있다.

물론 고객 중심주의를 내세운 기업 부문과 마찬가지로 대민 서비스에 관심을 기울이는 대부분의 공공 기관들은 기관과 시민간의 접점에 우선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공공 기관들의 관심이 시민의 기관이 제공하는 서비스와의 사이에서 거치는 개별적 행위에 매몰돼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공공 부문의 노력이 시민여정이라는 더 크고 중요한 그림을 놓치는 대신 파편적인 접점의 질을 개선하는 수준에 그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공공 서비스 질을 의미 있는 수준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눈으로 시민 경험 전체를 조망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는 말이다.

시민 경험은 여정 전반에 걸친 다수의 채널과 접점을 통해 축적될 수 있기 때문에, 시분 단위가 아니라 며칠, 심지어는 몇주간에 걸쳐서 구체화되는 것도 가능하다. 일례로 학자금 대출이 필요한 학생 시민의 경우, 이 학생의 시민여정은 다양한 대출 옵션에 관한 고민, 선택, 지원, 상환 및 해결, 그리고 멀리는 학업과 사회진출 완성이라는 시점에 이르기까지 장기간에 걸쳐 전개된다. 

이때 공공 부문이 시민여정에 주목한다면 단기적 행정 절차 위주의 전통적인 틀이 아니라 시민을 행정 서비스 전략의 중심에 놓는 장기적 사고가 가능해진다. 기존의 전통적인 틀은 개별 접점의 만족도 개선에 그쳤다면 시민 경험 기반의 방법론은 시민 여정 전반에 걸친 만족도를 측정해 개선하는데 조직의 우선 순위를 두도록 하는 공공 부문 혁신의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시민여정에 대한 관심은 조직 구조 디자인 자체도 시민의 필요와 조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해 공공 부문의 민첩성과 효율성 역시 제고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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