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편집부장 대우

"저는 이 자리에 피고인을 변호하러 나온 것이 아닙니다. 15년전 대한민국 사법부가 한 소년에게 저질렀던 잘못에 대해 사죄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여기에 섰습니다" 얼마전 개봉한 영화 '재심'에서 살인 누명을 쓰고 10년을 감옥에서 보낸 피고인을 위해 법정에 선 변호사가 한 말이다.

'재심'은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지난 2000년 전북 익산시 약촌오거리에서 한 택시기사가 살해된 채 발견됐다. 경찰은 당시 16살이던 목격자 최씨를 범인으로 지목했고, 수사과정의 불법 체포·폭행을 못 이긴 최씨는 범행을 자백하고 10년의 청춘을 감옥에서 보내게 된다. 옥살이도 억울한데 근로복지공단은 살해된 택시기사측에 지급한 보험금의 원금에 이자를 더한 1억7000만원을 최씨에게 청구한다. 하지만 최씨는 출소후 또 다시 6년의 세월을 누명을 벗기 위해 싸웠고 경찰의 강압수사로 인한 허위 자백 등이 밝혀져 16년만에 무죄를 확정받았다. 또 1999년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도 역시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 받은 경우다. 나라슈퍼 주인이 3인조 강도에게 살해당했고, 경찰은 당시 삼례에 거주하던 최모씨 등 3명을 검거했다. 이들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지적장애인 등 19~20세 청년이었다. 같은 해 진범이라 자백한 또 다른 용의자 3명이 나타났지만 경찰은 자백 번복 등을 이유로 이를 무시했다.

결국 최씨 등은 재심을 청구해 17년만에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2007년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도 뒤늦게 무죄가 입증된 경우다. 

지난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금태섭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의하면 최근 5년간 법원의 재심접수는 8791건이며 이중 2095명이 무죄 선고를 받았다.

재심청구가 거절된 경우(4840건)를 제외하면 재심 개시 사건의 무려 53%가 무죄였다는 것이다. 이는 대부분 경찰·검찰의 강압 수사와 성과주의식 수사, 피고인 또는 공범의 자백에 지나치게 의존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대중이 함께 느끼는 분노를 공분(公憤)이라고 한다. 국민들이 공분이 아닌 공감을 표할 수 있는 사법정의가 실현되는 것은 아직도 멀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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