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대림 서귀포의료원장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두말 할 필요 없이 먹는 일이다. 어쩌면 살기 위해서 먹는다는 말까지 나왔으니 말이다. 일전에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한국인의 밥상' 프로그램에서는 한국전쟁 후 힘들었던 시절의 '한 끼'를 주제로 여러 가지 음식들을 소개했다. '존슨탕'으로 알려진 부대찌개며, 이북에서 피난 내려오면서 함께 월남한 함흥냉면, 김치전 등을 소개하면서 잘 먹지 못했던 선조를 회상하면서 눈시울 적시는 가족 등을 소개하면서 '힘든 시절이었지' 하고 공감했다. 

필자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그다지 넉넉하게 먹지 못했던 것 같다. 당시에도 잘 사는 사람들은 잘 먹었겠지만 시골에서 살았던 필자의 동네에서는 먹는 것, 지금 말로 메뉴가 비슷하고 단출했다. 제주 음식의 특징은 양념을 적게 사용하거나 거의 사용하지 않아서, 음식 맛이 덜하였을 것이라고도 여겨진다.

과거의 사진을 보면 누구 하나 살찐 사람이 없었다. '이렇게 마른 적도 있었구나' 하면서 놀라게 하는 사진 속 인물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 세대보다는 아버지 세대가 더 힘들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버지도 그 분들 중 한 사람이었고 한국전쟁에 참전하고나서 잘 먹고 잘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일본에 밀항했었다. 

그 후로 어머니도 건너가게 돼 함께 일본에서 생활하게 됐다. 그래서 일본에 계신 부모님에게 종종 편지를 써서 보내드렸었다. 할머니께서 편지하라고 잔소리 하시면 마지못해서 편지를 쓰곤 했다. 초등학교 4학년 가을철쯤의 일이었던 것 같다. 당시는 편지 쓰는 것이 왜 그리도 싫었던지. 나름대로 끙끙대면서 편지를 작성해서 할머니께 먼저 읽어드렸다. "지금은 조베기가 한창이라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가만히 듣고 계시던 할머니께서 "대림아, 경해도 편지를 경 쓰민 안된다. 조베기가 한창이란 말은 다른 말로 하민 안 되커냐" 

나름대로 서정적으로 근사하게 표현하려 했던 것인데 그만 할머니께서 제동을 걸어오셨다. 그렇구나, 할머니한테는 조베기로 들렸던 것이다(조베기는 제주말로 수제비라는 뜻임). 우리 세대도 어려운 시절을 보냈지만 아버지, 할머니 세대는 더 어려웠던 시절을 보냈던 것이다. 

아버지는 일본에서 중화요리 식당을 운영했는데 영업이 잘됐고 영양상태가 좋아져서 몸에 살이 붙어 예전의 비쩍 마른 모습은 간데없고 인자한 배사장님의 모습으로 몰라보게 변모해 버렸다. 뚱뚱한 사장님이 소원이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 엊그제 일인데 지금은 오히려 비만을 성인병의 원인이라 단정하며 경계해 날씬하고자 하는 사회적 바람이 훨씬 크다. 

필자도 그 당시 제대로 못먹었던 것이 한이 됐는지 비교적 많이 먹는 편이지만, 요즘에는 가급적 적게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더구나 비만 예방을 위해 운동이 필수적인데 제주도민들은 주변 환경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예상보다 훨씬 덜 한다고 알고 있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서 아쉽지만 먹는 것도 조금씩 줄이고 운동도 적절하게 하면서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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