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서 ㈜아이부키 대표·논설위원

새로운 정권에 대한 기대와 함께 4차산업혁명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정보통신혁명으로 불리는 3차 산업의 광풍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다시 4차란다. 4차는 무엇인가. '초연결성'이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생명공학, 로봇공학 등 첨단기술이 생활 깊은 곳으로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손전화기가 인터넷에 연결되면서 '스마트'해지기 시작했고 뒤따라 냉장고, 전등, 그것들로 구성된 주방과 거실, 집과 길, 길을 다니는 자동차와, 나아가 도시 전체가 연결되면서 점차 '지능'을 갖기 시작했다. 

4차산업이라는 신통한 놈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 같지만 실은 역사는 도도히 한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상호작용이 증가하는 방향이다. 

광장을 만들고 최적의 길을 연결하자 전에 없던 소통의 밀도가 생겨난다. 세상이 급변하고 새로운 차원으로 이동해가고 있지만 눈을 돌려 개개인을 보면 여전히 나약하고 어리석기만 하다. 그렇다. 인간 개인의 수준은 구석기시대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개인의 행복을 따지자면 오히려 그 옛날이 나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회가 초연결화 되고 기술이 진보를 거듭할수록 반대로 골방으로 숨어들고 싶은 유혹이 거세지는 법이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국가의 행복 순위를 매기는 뉴스가 간간히 등장하고 있다. 경제성장을 대신하는 새로운 후생지표로 행복지수(Gross National Happiness)라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공한 곳은 부탄정부이다. 부탄은 국가행복지수 1위 국가라는 소문의 주인이 됐다. 

부탄은 히말라야 산맥 동쪽 네팔과 중국 사이 산악지대에 인구가 70만쯤 되는 폐쇄적인 왕정국가이며 1인당 국내총생산이 20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한다. 

부탄이 행복한 나라가 된 이유는 응답한 국민 가운데 97%가 행복하다고 답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상이 이러한데도 여전히 많은 지식인들은 행복한 나라 부탄을 마치 성지순례라도 다녀오듯 다녀와서는 행복한 나라 찬양에 열을 올린다. 

행복은 개인에 한정된 것이지, 그것을 공동체나 집단에 적용하는 순간 어리석은 통제가 자행되는 타락한 사회로 전락하게 된다. 

행복이라는 말은 정치인들이 표를 얻기 위해 유권자들에게 아부하는 표현 그 이상이 될 수는 없다. 국가적 관점에서는 행복이 아니라 사회의 초연결성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이다. 인류 공동체는 한번도 멈추지 않고 연결되고 확장되고 상호작용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정신차리지 않으면 균형감각을 상실하고 낙오되고 도태되기 쉽다. 중용(中庸)의 중(中)은 시중(時中)때에 맞추는 것, 곧 동적균형을 말한다. 중용의 오랜 진리는 각성하고 깨어서 시대의 뾰족한 지점에 서라는 것이다. 신영복 선생은 '떨리는 지남철'이라는 시에서 여읜 바늘끝의 불안한 전율이 없는 지남철은 이미 지남철이 아니라고 했다. 시대가 마구 흔들리는 것 같지만 정신차리고 잘 보면 지남철을 발견할 수 있고 떨리는 바늘끝이 가리키는 방향을 볼 수 있다. 

"상호작용이 줄어드는 방향이냐, 늘어나는 방향이냐"다. 우리는 골방에서 나와 거실로, 거실에서 길로, 다시 광장으로 나오면서 점차 나를 확장해간다. 

광장의 나는 관계의 그물망을 뜻한다. 내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골방에서 희미하게 깜빡이던 존재는 광장의 확장된 관계를 통해 흔들리지만 정확하게 북쪽을 가리키게 된다. 골방에서 혼자 중얼거리는 말이 행복이고, 일단 거실로, 길로, 광장으로 나오면 우리는 행복이 아닌 연결 가능성과 방향성을 논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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