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순덕 제주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논설위원

우리나라에서 제작되는 달력에는 표시돼 있지 않아도 2월 21일이 '세계 모어(母語)의 날'로 제정됐다는 사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물론 우리들만이 아니고, 세계인들 역시 자신들의 모국어가 위기에 처했던 경험이 없으면 언어의 중요성과 그 가치를 인식하는 데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한글' 창제를 기념하는 '한글날'이 공휴일로 지정된 것은 알고 있지만 한글이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사용하고 지켜야 할 대상임을 아는 데는 인색해 보인다. 우리들의 모국어인 국어는 일제강점기 '조선어 말살 정책'에도 사멸되지 않도록 저항하고 보호해 준 학자와 국민들 덕분에 현재까지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한글날은 법정 공휴일이니까 한국인들은 알고 있겠지만 '세계 모어의 날'은 누가, 언제, 무슨 이유로 만들었는지는 매년 2월 21일을 전후해 언론을 통해서 아는 정도다. 

어쩌면 관심을 갖는 사람에게만 각인된 소수자들만의 기념일은 아닐까.

여기서 우리들이 되짚어 봐야 할 것은 2월 21일이 '세계 모어의 날'로 채택된 이유다. 

이는 방글라데시의 '언어 수호 운동'에 기인한다. 원래 방글라데시는 '벵골어를 사용하는 나라'라는 뜻이다. 이 나라는 1947년에 파키스탄과 묶여서 영국에서 동파키스탄으로 독립했다. 
이후 파키스탄은 안정적인 통치를 목적으로 벵골어 말살정책을 펴서 학교 교육과 문학작품 등에 벵골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그러자 1952년 2월 21일 방글라데시 국민들이 벵골어 수호를 위해 투쟁했고, 그 결과 1956년에는 벵골어가 파키스탄의 공식 언어로 공표됐다(1971년 방글라데시는 파키스탄에서 독립함). 

유네스코에서는 1980년대 말부터 세계 문화의 다양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특별히 문화 다양성 보호의 핵심으로 언어를 강조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모국어로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언어의 소멸에 관심을 갖고, 소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언어 다양성 보호의 방법을 다각도로 모색해 오고 있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모어'(특히 소수자들의 언어)를 보호하고 기념하는 것은 언어 다양성의 가치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며 이는 문화 다양성 보호의 취지에도 해당된다. 
그래서 유네스코에서는 2002년 12월 20일 제57차 총회에서 매년 5월 20일을 '세계 문화 다양성의 날'로 제정해 세계인들이 지역별, 국가별로 문화의 보호와 증진에 관심을 갖기를 바라고 있다. 

특별히 유네스코에서는 1999년 11월 제30차 총회에서는 2월 21일을 '세계 모어의 날'로 지정했고 2000년부터 '제1회 세계 모어의 날'이 기념되고 있다. 올해로는 18년이 되는데, 이는 성년에 해당된다.    

모어를 기념하는 날, 이와 같은 기념일은 개인이나 국가 모두에게 의미 있는 날이다. 한국인들에게 '모어의 날'은 '한글날'이 해당되는데 이는 국가 차원에서 바라본 것이다. 반면 국내 여러 지역으로 눈을 돌려보면 지역민들이 오랫동안 사용해 온 지역의 언어가 있으며 그것을 기념하는 날을 제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다.   

2000년대 들어와서 제주 사회 구성원들은 제주말의 가치를 인정하고, 제주말이 지속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보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제주말 부흥을 위해 좀더 적극적인 사회운동을 전개하는 방법으로는 제주말을 기억하는 특별한 날을 만드는 것이다. 현재 '제주어 보전 및 육성 조례'가 제정돼 있고, '제주어 주간'도 정해져 있으나 일반화되지 않아서 관심 있는 사람들만의 주간으로 알려져 있는 정도다. 앞으로는 제주말 보호와 증진을 위한 기념일 지정이 필요하다.  

이에 우리는 '모어를 기념하는 날'이 있다. 이 정도는 알아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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