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익 제주국제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논설위원

정치가도 배우처럼 무대에 등장할 때보다 떠날 때 뒷모습이 더 아름다워야 한다. 하지만 우리 대통령은 헌법을 유린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헌법재판의 절차와 결과조차 무시하려는 모습을 연출하면서 떠나려고 한다. 

대한민국의 근본을 뒤흔든 대통령과 비선실세들의 만화 같은 국정농단행위들, 고위 공직자들의 소신 없는 처신들, 그리고 천박한 자본주의가 낳은 재벌들의 사악한 범죄행위들은 정치적인 타협이 아닌 오로지 법률에 의해 심판받아야 한다. 

이러한 시기에 생각나서 꺼내 읽은 책이 독일 학자 칸트로비츠의 「법학을 위한 투쟁」이었다. 그가 제시한 정의로운 재판에 대한 몇 가지 명제들을 중심으로 우리의 기막힌 현실을 비교해 봤다. 

"판결의 근거는 법률에 있어야 한다" 판사의 영장발부 심사도 일종의 재판이므로 당연히 법률에 따라야 한다. 형사소송법의 구속사유에는 피의자의 주거와 생활환경을 고려하라는 규정은 전혀 없다. 

하지만 증거인멸 우려가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벌 3세의 첫 번째 구속영장을 심사한 판사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까지 들어서 구속영장을 발부하지 않았다. 이처럼 법률에 근거가 없는 결정이라면 하지 말았어야 했다. 

앞으로 재벌 3세보다 더 귀한 생활환경에서 지낸 피의자라도 법이 규정한 사유에 해당하면 당연히 구속시켜야 한다.   

"법관은 오직 법률의 시녀여야 한다" 우리나라 법관의 종류는 대법원장, 대법관, 판사 이렇게 3종류밖에 없어서 출세해봐야 법적인 명칭은 대부분 그냥 판사일 뿐이다. 그러니 권력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다. 

이제 법관은 국가경제와 정치혼란까지 걱정하지 말고 오직 헌법과 법률에 충성을 맹세한 시녀로 이번 국정농단 사건 연루자들을 재판해야 한다. 

"모든 판결은 이유를 제시해야 하며 예견가능 해야 한다" 현재 대통령의 탄핵사유가 무엇인지 모르는 국민은 없다. 대통령 이외의 피의자들이 범한 구체적인 피의사실도 특검이 전부 공개해서 다 알고 있다. 

그러니 국민입장에서는 탄핵 심판하는 헌법재판소나 법원의 형사재판 결과에 대해서 충분히 합리적인 예견이 가능한 상황이다. 따라서 법관은 마술사처럼 해괴한 법률 논리를 펼치는 마술을 해서는 안되고 국민 모두가 예견가능한 판결을 하라는 경고를 잊지 말아야 한다. 

"판결은 감정이 없어야 한다" 이번 헌법재판의 대상은 대통령이지만 그 외에도 여러 여성 피고인들이 있다. 이미 대통령 변호인이 여성의 사생활을 언급하면서 대통령 행적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값싼 감정에 호소한 바 있다. 하지만 법관은 판결에 성을 포함한 어떠한 개인적인 감정을 반영해서는 안된다. 대통령직을 포함한 공직은 이를 수행하는 특정 자연인의 인격보다는 국가기관으로서의 의의만 있을 뿐이다. 성별에 따른 구별 수용은 교도소에서 하면 충분하다.   

"판결은 대중성을 가져야 한다" 판결의 대중성이란 무지하고 우매한 자들의 외침에는 절대로 영향을 받아서 안 된다는 의미도 동시에 포함한다.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면서 뜬금없이 미국의 성조기를 흔드는 이해 불가능한 일부 대중의 주장과 심리상태가 조금이라도 판결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된다. 

끝으로 '정의에 대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이번 재판의 대상은 국민들의 상상을 초월한 무능과 비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추잡한 권력형 범죄일 뿐이지 보수니 진보니 하는 정치논쟁이 결코 아니다. 

한편 재판에서 법철학적 마인드가 절실히 요구될 경우는 피고인의 세세한 행위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죄목이 법률에 없을 때다. "올림 머리하거나 성형 수술한 게 범죄에 해당하느냐"식의 억지 변론이 결코 판결에 반영돼서는 안된다. 

무엇보다도 법관은 정의에 대한 의지 그 자체가 이미 존재라는 철학적 사실과 그러한 의지의 포기가 우리 현대사에서 법을 훼손한 주범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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