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훈식 제주어보전조정위원·시인

제주어는 몇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다. 항간에는 제주어를 제줏말이라고 새롭게 쓰고 있다. 다행히 일부에서 쓰는 단어라 안도하지만 제주도에서 '제주어 조례'를 지정할 때 당당하게 '제주지역어'라고 표기했다. 그것을 줄여서 '제주어'라고 쓴다고 발표한 것이 공식 명칭이다. 그러니까 서울도 지역이라는 의미로 지역 균형 발전을 꾀한 지도 오래다.

물론 오해가 있을 수 있어, 훈민정음인 국어에 대한 대등한 위치로 곡해한 육지 국어학자 중에는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제주 출신 국어학자는 더욱 당당할 필요가 있다.

제주도는 특별자치도이므로 제주어 또한 특별함이 넘쳐난다. 지역마다 특징을 내세워야 지역문화와 복지가 보다 구체적으로 실현되므로 특산물마다 독특한 스토리텔링을 설정하고 있는 추세다. 제주어도 제주도 언어이면서 독특한 문화 콘텐츠인 것이다. 제주어가 도민의 언어예술로 발전할수록 소멸위기를 극복하고 희소가치를 자랑하는 제주도 문화유산이 된다. 그러므로 제주어는 읽기 좋아야 하고 쓰기 좋아야 도민의 관심과 사랑을 전폭적으로 받게 되므로 누구나 즐거운 고민을 해야 한다.

전에 「못해도 좋으난 아프지나 맙써」라는 제목으로 제주어 시집을 냈다. 제목부터 공쟁이(크레임)를 받았다. 표기로 '좋으난'이 옳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 좋으냐'고 물을 수는 있어도 '좋으난'은 어림없다. 그렇다고 '조난'이라고 표기하면 곤란하다. '조난'은 '서서 졸다' 인 잠투정이다. 그리고 '맙써'를 '맙서'로 쓰고 맙써로 소리내야 한다는 것이다. 

더하여 '먹고 있다'는 의미를 '먹엄져'라고 쓰고 '먹엄쪄'라고 발음해야 제대로 된 제주어라는 거다. 제주도가 좋아서 제주도에 정착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젊은 사람들조차 '먹엄져'를 '먹엄쪄'라고 헛소리를 내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먹엄쪄'하면 누구나 먹는 중임을 알 것임에도 궁여지책으로 '먹엄쪄'를 '먹엄져'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오히려 혼란스럽다. 그리고 처소격인 '듸'가 도에서 발간한 「개정증보 제주어 사전」에 엄연히 기록돼 있음에도 없애버렸다. 그러니까 '듸'와 '디'를 구분해서 표기해야 읽기 좋고 뜻을 이해하기가 용이하므로 다시 살려내야 한다. 고어에도 '그듸'라고 그곳이라는 의미가 시퍼렇게 살고 있음에도 사유격인 '디'와 범벅으로 쓰고 있어 안타깝다. 말로만 듣다가 최근에서야 표기된 제주어 읽기가 녹록치 않으니 '먹는듸'와 '먹는디'로 표기하면 '먹는 곳'과 '먹고 있는데'라고 읽으면 이해가 자연스레 빨라진다.

조선시대의 제주도 사람들은 절반 가까이 노비신세와 같았다. 1600~1800년의 출륙금지령만 봐도 그렇다. 오죽했으면 감귤을 따줄 인부를 구할 때도 놉이라고 했겠는가. 신분이 낮아 배우지 못해서 서러운데 제주어까지 '학교'를 '혹게', '선생'을 '선싱', '구경'을 '귀경', 더하여 '4·3'을 '소솜'이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있어 서 제주도 사람으로서는 쑥스럽다.

지금은 초등학교지만 필자가 다닐 때는 '국민학교'였고, 부모나 조부모 시대에는 '소학교'였다. 재미난 것을 구경했을때도 구경했다고 했지, 귀경이라고 한 적은 칠십 넘도록 살면서 처음 들어본다. 몰테우리, 보재기, 감귤 타기, 새 비기, 성담답기로 혼시반시 놀 저를없이 살젠 허난 구경을 입을 비틀면서까지 귀경이라고 말할 저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현실적으로는 언어축약이 많았고, 곤고한 삶을 위로하기 위해 의태어, 의성어로 삶을 풍요롭게 묘사했던 것이다. 또한 시간과 공간 개념을 확연히 구분하려고 시간을 '고리'로, 공간을 '소시'로 썼다. 그러니까 과거, 현재, 미래를 구분하는 말로 '고리 갈름'이 있음도 상기하자. 여기에 언급하지 않았지만 '고치'와 '고찌'의 차이와 '마씸'과 '마씀'의 차이도 제주도 정서에 기인하고 있다는 사실로 봐도 제주어는 단순한 언어학문이 아닌 제주도 정신이며 제주도의 힘이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