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연구소장·논설위원

대만 2·28기념식은 원주민의 '단결의 노래'(원주민어 '마라수탄')로 시작됐다. 너나 할것 없이 모두가 단결해야 한다는. 지난 28일 타이베이 2·28평화공원. 백합으로 둘러싸인 2·28 제70주년 기념식장. 오후 2시. 가랑가랑 빗속에 대만의 역사상 첫 여성 총통이 걸어왔다. 단정한 단발머리, 회색 수트 위에 헐렁하게 걸친 잿빛 점퍼차림. 수수했다. 그녀가 앞자리의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옅은 미소로 유족들을 어루만졌다. 제주4·3연구소가 대만2·28기금회와 '4·3과 2·28'을 주제로한 국제공동학술심포지엄을 마치고 참석한 이 기념식장에서 차이잉원 총통을 가까이서 대할 수 있었다. 그의 연설은 강력하고 울림이 있었다.   

이날 차이 총통은 국사관 전관장으로 제주4·3연구소의 세미나에 참석하기도 했던 고 장염헌 교수가 생전에 계속 바라던 것이 "2·28사건에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가 없다는 것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었다"며 "그 일을 우리가 이어서 완성하겠다고 유족 여러분 앞에서 약속을 드린다"는 말로 담화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대만정부는 모든 2·28서류 기밀을 해제했고, 화해는 진상 규명을 전제로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내일 국가 아카이브국이 정치에 관한 기록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입니다. 각 기관의 2·28이나 계엄시기 때에 관한 자백서, 기록, 판결서, 공문서를 일일이 찾아내겠다. 그 기록에 대해서 해석하고 이는 '국가과거청산조사보고서'의 바탕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가장 신중한 태도로 2·28에 관한 책임귀속을 다룰 것"이라고 조목조목 제시했다.

"물론 경제도 중요하지만 정의도 아주 중요합니다. 발전과 정의가 함께 존재하는 나라가 마땅히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청산은 투쟁이 아닌 화해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과거를 청산하고 나서 대만에서는 어느 정당이든 다시는 권위주의의 짐을 짊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진실을 완전히 밝혀내고 가해자가 사과하며 피해자와 유족이 용서해 준다는 그날이 오기를 기원합니다"

차이 총통의 2·28담화는 그가 지난해에 한 대만 고산 원주민에 대한 사과와도 상통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400년간 원주민이 받은 아픔이 한 장의 원고로, 한 마디 사죄로 끝나길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의 사죄가 나라 안의 모든 사람들이 화해로 향하는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며 핍박받은 원주민들에게 지도자로서 400년만의 사과를 하지 않았던가.

4·3의 도화선이 된 3·1사건과 단 하루를 사이에 두고 벌어진, 너무도 유사한 아픔을 공유하고 있는 대만2·28사건은 '대만판 4·3사건'이라고도 불린다. 해서 그날이 오면 도시 20여 곳에서 추모식이 열린다. 시민단체의 진상규명 요구 시위로 도시는 열병을 앓는다. 그날 밤, 대만의 신문과 방송은 2·28의 굵은 활자들이 불꽃을 뿜고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듯 설전이 오가고 있었다. 미해결의 과거사를 안고 있는 나라들의 징후인가. 

이 땅에도 첫 여성대통령이 있다.  단 한번 4·3기념식에 참석하지 않던 지도자, 이제 곧 다가온 헌재의 마지막 심판 앞에선, 그럼에도 끝까지 버티는 박근혜 대통령. 참, 그렇다. 지도자의 과거사청산, 역사인식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슬픈 도시 타이베이에 체류하던 나흘 내내 비가 내렸고, 그것은 2만이 넘는 희생을 가져왔던 그날에 대한 장중하고도 긴 애도처럼 보였다. 거리는 2·28의 상처와 기억투쟁으로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럼에도, 차이 총통은 강한 희망을 전했다. "2·28의 선배들, 대대손손의 대만 사람들, 화창하고 꽃 피는 봄날의 경관, 즉 춘난화개를 기다린다"고 했다. 이 나라에선 촛불과 태극기가 전혀 다른 시선을 향할 때. 

우리들은 지금 한판 마지막 결전을 기다리는 자들처럼 곧 다가온 헌재 탄핵의 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간절하게. 그리고 하나만 더 소망한다. 적어도 다음 대통령에겐 4·3 추념식에 "참석하나 안하나"같은 소모전은 없어야 한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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