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숙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워킹맘에게 과로사 권하는 사회', 평생 육아의 고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국 엄마의 생애주기 '맘고리즘', 엄마 혼자서 육아를 전담하는 현상을 일컫는 '독박육아' 등은 지금의 한국 여성 특히 엄마들의 삶을 잘 보여주는 단면이다. 한편 아빠들의 삶 또한 녹록지 않은데 '대한민국 육아 대디 트랜드 분석 보고서(이노션)'에 따르면 아이를 키우는 한국 부모들이 인터넷 상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이 아빠는 "미안해"와 엄마들은 "힘들다"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사회의 엄마들은 육아로 인해 힘들고 아빠들은 육아와 관련해 아이와 아내에게 미안함을 표현함으로써 고달픈 한국사회의 육아 현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은 '저출산'과 '돌봄의 공백'이라는 또 다른 사회 현상과 연결돼 있다.    

이러한 문제에 주목해 저출산 대책 및 일·가족 양립 정책이 강화되고 있지만, 하나 같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은 보지 못하고 손가락 끝만 보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 사회가 내놓는 해결책은 여성에게 '집으로 다시 돌아가라'이거나 '일과 가족을 양립하는 슈퍼우먼 또는 저임금노동자가 되라' 등 여성 개인에게 돌봄 책임을 전가하는 기존 방식을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행정자치부가 지난해 12월 저출산 대책이라는 명목으로 내놓은 지방자치단체별 가임기 여성 수 등을 표기한 '대한민국 출산 지도'와 지난 24일 국내의 한 국책연구기관이 제안한 '고소득·고학력 여성의 하향 결혼 유도' 및 '채용 과정에서 불필요한 스펙에 불이익 부여' 등의 출산율 제고 대책이 그것이다. 인간의 삶은 단순한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투입 대비 산출과 같은 경제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삶을 재단하려 할 때 나타나는 문제이다. 

우리 사회의 일·가족 양립 정책 또한 여성 인력 활용 및 출산율 제고 목적에서 강화돼 왔기 때문에 일·가족을 양립해야 하는 주체는 여성 특히 자녀가 있는 기혼 여성이 중심이 돼 왔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여성의 이중고를 강화한 한편, 남성의 돌봄 참여 및 공동체의 역할에 대한 관심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제주 지역 여성들은 역사적으로 강한 생활력을 보여줬고 현재에도 전국에서 여성 경제활동 참여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따라서 오랫동안 제주 여성에게 일·가족 양립의 문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으며, 이로 인한 이중고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이와 같은 사회 현상에 대해 단편적이고 임시 처방적인 해결책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물음으로 시선을 돌려야 할 필요성을 제안한다. 바로 '우리 사회는 아이 키우는 일이 보람으로 여겨지는 사회인가'하는 것이다. '아이 키우는 일이 보람되는 사회'란 아이 키우는 일이 그 자체로서 인간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가치롭게 여겨지는 사회를 말한다. 아이 돌보는 일, 다시 말해 '돌봄노동'이 가치로운 일로 여겨진다면 그에 알맞은 보상이 이뤄져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은 보이지 않는 일,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일이었다. 요컨대, 돌보는 일은 오랫동안 '여성의 무급노동'이었으며, 이에 대한 여성들의 문제의식과 저항의 발로가 '저출산' 현상으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 '사람의 가치를 살리는 제주'가 되기 위해서는 돌보는 일에 남성과 지역 사회의 참여가 함께 이뤄질 필요가 있다. 특히 남성들의 돌봄 참여 경험은 기존에 알지 못했던 돌봄의 중요성과 가치를 몸소 느끼게 됨과 동시에 고정된 성별 분업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돌봄 가치가 배제된 노동 중심의 직장 및 공동체 문화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돌봄 가치가 통합될 수 있는 지역 사회의 변화에도 기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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