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민일보」 독자 자유게시판에는 ‘동심을 얼어붙게 하는 숙제’라는 제목의 독자투고가 올라왔다. 이 독자는 ‘초등학교 1학년 동생이 성탄절에 대한 숙제를 했는데, 담임 교사가 동생에게 숙제를 제대로 안 했다며 꾸짖었다’는 것이다.

 그는 “어린 동생이 기독교의 교리나 로마의 역사에 대해 설명해야 제대로 된 숙제냐”면서 “어머니는 항상 막내의 숙제를 대신 해주느라 저녁마다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초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한 숙제가 스스로 하기에는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어렵고 까다롭다”고 밝혔다.

 독자가 지적한대로 초등학생을 둔 부모는 자녀들 숙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부모들은 한결같이 "아이가 혼자하기엔 너무 어려운 내용이어서 부모가 나서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자녀 방학숙제는 부모가 
 요즘 자녀 대신 방학숙제를 해주는 부모들이 크게 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단순지식 위주의 숙제에서 봉사활동, 조사·효경활동 등 체험학습이 늘어났기 때문. 또 학부모가 학교에서 지정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야 하는 경우도 있다.

 도내 초등학교에서는 이번 겨울 방학에 ‘취미·특기 기르기, 학습 정리 과제, 조사활동, 체험활동, 겨울철 건강 지키기 운동, 봉사활동, 가정 규칙 만들기, 부모님 도와 집안 일하기, 부모님과의 대화, 방학생활 중간 반성하기, 부모님의 마음 알기’ 등 다양한 숙제들이 주어졌다. 이외에도 일기 쓰기, 교육 방송 보기, 책 읽기(5권 이상), 독서카드에 메모하기, 독후감 1편 쓰기 등의 숙제들이 있다.

 하지만 실제 초등학생의 숙제를 부모들이 대신 하는 그릇된 풍토를 낳고 있다. 자녀가 담임에게 제출하는 양과 내용에만 집착, 부모들이 직접 나서는 경우. 더 나아가 어린 자녀가 숙제를 스스로 해결하기에는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내달 초 도내 학교에서 개학하면 방학숙제와 이에 대한 시상을 하는데 이를 두고 비판의 의견이 많다. 어디까지나 자율과 창의성을 높이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할 초등학교 교육이 우리 아이가 방학과제물 상이라도 받게 해야겠다는 어른들의 욕심으로 멍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부모들은 어린이들이 자신의 수준에 맞춰 과제물을 했을 경우 성적이 뒤쳐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여기에는 어린이의 능력은 고려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우수한 것만을 평가하는 교사들의 평가기준도 한 몫을 한다.

◆어렵고 억지 체험학습 많아 
 요즘 제주시내 모 관공서에는 방학을 맞아 초등학생들이 심심찮게 찾아온다. 견학이 아니라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것. 어린이들은 봉사활동을 한 후 봉사활동계획서와 확인서에 확인도장을 받고 학교에 제출해야 방학숙제로 인정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관공서의 한 관계자는 “부모와 함께 어린이들이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찾아오지만 마땅히 시킬 일도 없다”며 “그냥 봉사활동 몇 시간 했다는 확인서에 도장을 찍어준다”고 귀띔했다.

 국립제주박물관 전시실에도 초등학생들로 북적인다. 하루 500명의 관람객 중 방학숙제를 하러온 어린이가 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런데 어린이들은 전시작에 관심이 없고 정작 따라온 어머니들은 수첩을 든 채 열심히 메모를 하느라 설명문 앞을 떠나지 못한다. 방학숙제를 대신해 주는 엄마들이다.

 관공서나 박물관에서만이 아니다. 제주시내 모 학교에서는 가족의 족보를 제작하라는 숙제를 냈다. 물론 핵가족 사회에서 친척들과 왕래가 줄어든 학생들에게 친척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자는 취지. 하지만 현실은 부모가 나서서 족보를 쓰고, 액자를 만들어 제작한다. 초등학생에게는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주부 김 모씨(38·제시 일도2동)의 초등학교 3학년 자녀의 방학숙제는 ‘나의 홈페이지 만들기’. 그나마 선택과제 중에서 쉽다고 생각했지만 초등학생 3학년 아들이 혼자하기에는 터무니없었다. “컴퓨터를 전공한 동생에게 부탁해 겨우 숙제를 해주었다”는 김씨는 “숙제를 안 해 가면 선생님에게 꾸중들을 게 뻔한데 어떻게 안 해 줄 수가 있느냐”고 털어놓는다.

 방학숙제도 사고 파는 시대다. 방학중에 원하는 주제와 문체로 독후감·기행문·영작문 등을 써주는 ‘대필 아르바이트’와 모든 방학숙제를 대신 해주는 ‘방학숙제 패키지’까지 등장, 학부모와 학생들을 유혹하고 있다. 인터넷상에는 ‘학년별 관찰일지, 감상문 등 다운로드 하세요. 건당 500원∼1,000원’ 등의 광고들이 버젓이 올라와 있다.

 제주시 연동의 한 보습학원 관계자는 “실제로 초등학생들이 하지 못하는 숙제들이 많아진 만큼 학부모들이 골치를 앓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인터넷을 잘 활용하는 주부들이 부업으로 숙제 대행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부모 의존심만 길러
 사회가 다양해지면서 학생들이 스스로 과제를 선택하고 책임을 지는 훈련이 초등학교 때부터 필요하다. 따라서 교육당국은 자기주도적인 학습을 통해 사고력과 창의력을 기르는 차원에서 현장체험 위주의 방학숙제를 학교에 적극 권장하는 현실이다.

 문제는 숙제가 초등학생들에게 버거운 존재라는 사실이다. 교육당국에서 내건 취지는 좋지만 실제로는 부모가 자녀 대신 숙제를 해주면서 아이들 사이의 위화감을 조성하고 도덕불감증 등을 초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부모가 아이 대신 숙제를 해 줄 경우 자녀의 지식을 쌓는 기회를 막는 것은 물론 아이의 정직성과 창의성을 해치고 의존심만 기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아이를 위한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교사들도 방학과제에 대해 귀찮더라도 학생이 했는지를 판별하도록 노력해야하며 숙제를 낼 때에는 정답을 원하는 과제보다 스스로를 발견하고 아이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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