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병찬 서예가·논설위원

봄 마중 풀꽃들이 길가 양지바른 한 모퉁이에 기다리던 봄기운의 마중물인양 잠에서 덜 깬 풀섶 밑에 소담스럽게 여기저기 앙증맞게 피어나 있다. 꽃샘추위 소소리바람에도 뭇 발걸음에도 아랑곳 않고 작디작은 연보랏빛 꽃송이들이 새해 새 봄빛을 환영하는 듯 새 봄이 오는 길을 가로질러 반갑게 미소 짓고 있다. 작은 풀꽃에도 큰 희망이 있다.

싱그러운 새싹들이 파릇파릇 겨우내 누렇던 들판을 연초록으로 물들이고 있는 올해 정유년에도 어느덧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찾아와 한창 무르익어가고 있다. 상큼한 새봄이 왔다고 여기저기서 새움이 터져 나오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듯하다. 개구리가 뛰쳐나오는 경칩도 지나고 보니 봄은 많이 진행된 듯하다.

새해가 되면 누구에게나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활기가 넘친다. 그러기에 모든 동식물들에게도 각기 소생한다는 단어가 주어지게 되는 것 같다.

계절의 감각을 누구보다도 감성적으로 느끼고 있다고 자부하는 시인들에게도 봄기운의 시정이 분출하고 있어, 보는 이의 마음과 시선을 멈추게 한다.

"3월은 오는구나, 오고야 마는구나. 2월을 이기고, 추위와 가난한 마음을 이기고, 넓은 마음이 돌아오는구나. 돌아와 우리 앞에 풀잎과 꽃잎의 비단방석을 까는구나"(나태주님 시에서)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바람결에는 싱그러운 미나리 냄새가 풍긴다. 해외로 나간 친구의 체온이 느껴진다. 참으로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골목길에는 손만 대면 모든 사업이 다 이뤄질 것만 같다. 동, 서, 남, 북으로 틔어 있는 골목마다 수국 색 공기가 술렁거리고 뜻하지 않게 반가운 친구를 다음 골목에서 만날 것만 같다. (중략)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바람 속에는 끊임없이 종소리가 울려오고 나의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난다. 희고도 큼직한 날개가 양 겨드랑이에 한 개씩 돋아난다"(박목월님 시에서)

위 시에서 주는 시인의 마음에서 따스한 봄날을 그려내는 희망을 부를 때 이를 보는 이 사람의 뇌리에서도 봄기운이 가득함을 느낀다. 

3월이 되면 누구보다도 마음 설레는 곳이 있다. 어린 눈망울들이 초롱초롱한 학교에서는 어린이들마다 새 학년 새 교실 새 선생님 그리고 새 책, 이 모두가 새로운 꿈의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봄기운일 것이다. 그래서 어린이도 선생님도 마음 설레기는 매 한 가지, 부풀어 오른 새 희망 속에서 이뤄지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이야말로 새 일꾼으로 자라나는 배움의 터전이라고 여겨진다. 교사와 학생은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배운 연후에야 부족함을 알고 가르친 연후에야 모자람을 알게 된다.(學然後 知不足, 敎然後 知困)"라는 말을 흔히 한다. 부족함을 안 연후에 스스로 반성할 수 있고, 모자람을 안 연후에 스스로 힘쓸 수 있으니 이 또한 자기 발전의 발판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해인님 시 3월에서는 학교교육 현장에서의 결실에 대한 희망을 그려내고 있다. "단발머리 소녀가 웃으며 건네준 한 장의 꽃봉투. 새봄의 봉투를 열면 그 애의 눈빛처럼 가슴으로 쏟아져오는 소망의 씨앗들. 가을에 만날 한 송이 꽃과의 약속을 위해 따뜻한 두 손으로 흙을 만지는 3월. 나는 누군가를 흔드는 새벽바람이고 싶다. 시들지 않는 언어를 그의 가슴에 꽂는 연두색 바람이고 싶다"

꽃피고 새가 노래한다는 좋은 계절의 봄, 3월이다. 새봄을 맞이하는 사람들마다의 마음에 고운 꽃씨 하나씩 심어 아름답고 향기로운 세상을 만들어보는 꿈을 꿔본다.

마른 나뭇가지에 새싹이 돋아나듯 새 움을 틔우며 행운과 새 희망이 돋아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아름답고 고고하고 품위 있는 자태가 든든하게 자리 잡아 아름다운 꿈을 마음껏 펼치는 새 봄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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