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5. 대구국채보상운동

평안도까지 전국민 참여
함덕에 국채보상소 설립
올해 기록유산 선정 앞둬
민간이 '등재 주도' 의미
제주서 순회전시회 추진

바람이 차가울수록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달아오른다. 새 봄에 대한 우리의 희망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겨우내 동면에 빠졌던 제주4·3이 잠에서 깨어 새 봄을 맞고 있다. 긴 어둠을 헤치고 어렵게 빛을 본 제주4·3이 '제주만의 기억'을 넘어 '세계인의 기록'으로 나아가는 시점과 마주한 것이다. 
올해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눈앞에 두고 있는 '국채보상운동'이라는 선행사례를 통해 제주4·3의 방향성을 찾는다.

△시대적 배경

일본은 1904년 고문정치 이래 강압적으로 을사늑약(1905년)을 체결하고 이듬해 통감부를 설치해 혹독한 식민통치를 시작한다.

일제 통감부는 대한제국의 경제를 파탄에 빠뜨려 일본에 예속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대한제국을 핍박해 교육제도 개선과 금융기관 확정정리, 도로 및 항만시설의 개수확충, 일인관리 고용 등의 명목으로 고이율의 차관을 들여오게 한다.

이렇게 일본의 계속된 차관공세로 2년 사이 대한제국은 원금만 해도 1650만원에 달하는 채무를 지게 됐고 해마다 늘어나는 이자 또한 상당했다.

이에 대한제국은 1907년 2월에 당시 신채로 350만원의 채무를 정리한다. 

남은 국채 1300만원은 당시 대한제국 정부의 1년 예산과 맞먹는 거액으로 국채는 '국가의 존망이 달린 문제'가 됐다.

△운동의 전개 및 결과

이러한 국운의 절박함에 1907년에 이르러 드디어 거국적으로 국채보상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국채보상운동을 제창하고 나선 것은 경상도 대구의 애국지사들이었다.

1907년 1월29일 대구의 광문사에서 명칭을 대동광문회라 바꾸기 위한 특별회를 연 자리에서 부사장인 서상돈은 '국채 1300만원을 갚지 못하면 장차 토지라도 주어야 하므로 동포 2000만이 담배를 3달만 끊고 그 대금으로 국채를 보상하자'면서 국채보상 문제를 제안한다.

이후 서상돈 등은 '국채보상 취지문'을 작성해 전국에 반포하면서 전 국민의 동참을 호소하고 서울에서는 국채보상기성회가 설치돼 국채보상운동을 전국화·조직화한다. 

이와 함께 기탁되는 의연금을 보관하고 추진하기 위한 통합기관의 필요성에 따라 같은 해 4월8일 대한매일신보사에 국채보상지원금총합소를 설치한다.

국채보상운동은 당시 상공인과 서민은 물론 부녀자까지 합세해 남자는 담배를 끊고 여자는 소중한 머리채를 자르고 패물을 내놓았다. 고종황제도 금연으로 동참했고 안중근 의사와 이준 열사도 함께 했다.

국민의 자각에 의해 자발적으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은 대한제국 당시 경기도부터 황해도, 평안도까지 전국에 국채보상소가 운영되는 데 당시 전라도에 편입돼 있던 제주는 신좌면 함덕리에 국채보상소가 설립된다.

국채보상운동의 전국적 파급과 성과에 놀란 일제 통감부는 국채보상기성회 총무를 근거도 없이 누명을 씌워 구속하는 등 국채보상운동을 탄압한다. 이를 계기로 국채보상운동은 점차 퇴조하게 된다. 이 당시 모인 의연금은 이후 한국 국민들의 민립대학 설립운동의 재정적 기초가 된다.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준비과정

전 국민이 참여한 민간 주도의 경제자주권 회복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대구에서는 2002년 5월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이하 사업회)를 구성했다.

사업회는 2015년 8월 국채보상운동 관련 기록물 2475건을 선정해 문화재청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을 한다.

문화재청은 같은 해 11월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최종 후보로 선정하고 유네스코 사무국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은 외채를 앞세운 제국주의의 경제적 침투에 대해 금연, 절약, 나눔 등을 통한 전 국민의 평화적 기부운동의 전개 과정을 기록하고 있어 세계사적 중요성, 독창성 등이 뛰어나다는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대구시와 사업회는 지난 2015년 3월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국회 세미나, 대구박물관 특별전, 대시민 보고회, 100만인 서명운동, 전문가 토론회 등을 활발하게 펼치는 등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왔다.

또 국채보상운동의 발의자인 서상돈 선각자를 기념하는 '서상돈 상'을 제정, 격년으로 운영하고 있다.

특히 올해 봄 제주국채보상운동을 조명하는 순회전시회 제주도 개최를 추진 중이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은 올해 8월 열리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의 심사를 거쳐 최종 등재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 제주4·3에 주는 교훈

제주4·3의 기록유산 등재가 당면과제로 떠오른 지금 국채보상운동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바로 지역이 중심이 돼 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했고 성과를 목전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새마을운동'이나 등재를 앞둔 '조선왕실 어보·책' 등은 정부가 중심이 돼 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했다.

하지만 국채보상운동은 광주5·18 기록물처럼 정부가 아닌 민간과 지자체가 직접 나서는 등 기록유산 등재 추진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제주4·3도 정부 주도의 기록유산 등재는 녹록지 않은 현실을 감안, 선행사례를 통한 인적·물적 인프라 확충과 교류 활성화 등이 선행돼야 한다.

70년 동안 깊이 잠들었던 제주4·3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제주의 아픔으로 제주인의 가슴에 남아있는 제주4·3이 밝은 빛을 보고 세계인의 '기록'으로 남을 때 제주가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평화와 인권을 상징하는 섬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인터뷰] 엄창옥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추진단장

엄창옥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추진단장(경북대 교수)는 "제주4·3은 한국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권탄압과 국가권력이 민간에 자행한 인권탄압의 사례인 동시에 반드시 치유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해야 할 사례"라며 "이런 점에서 20세기의 역사 속에서 세계적 반성과 새로운 21세기를 위한 진원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엄 단장은 "제주4·3은 제주시민의 깊은 자의식 속에 각인돼 있는 정신이고 이 정신을 기반으로 새로운 제주정신을 만들어 가는 상황이므로, 이것을 기반으로 세계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창문을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며 "아직도 제3세계에는 훼손된 인간의 존엄성이 방치된 사례가 다양하므로 제주도민의 인간 존엄성 치유를 이들과 함께하는 방안을 모색함으로써 세계적 자산으로서 제주4·3의 가치를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엄 단장은 "국채보상운동 자체가 일반 국민, 그것도 역사의 뒤편에서 고난을 당하던 민초가 중심이 돼 국가를 구하는 운동이라는 정신을 살리기 위해 민간이 주도하는 것은 당연하며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민간이 주도하기 위해서는 지역주민들의 합의가 매우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국채보상운동의 불씨는 전국 각지에 산재했지만 그 불꽃이 대구지역에서 일어난 것처럼 우리 지역의 유산을 세계적 유산으로 만들어 가는 것도 지역 내의 뜨거운 불씨를 점화시키는 열정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각도에서의 재조명이 필요하고, 나아가서는 이것이 지역주의에 매몰되지 않는 열린 시각을 확보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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