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의 향토사학자 심재(心齋) 김 석익(金錫翼)의 『해상일사(海上逸史)』는 『삼국유사(三國遺事)』처럼 제주도의 야사를 적은 역사서라 할 만 하다. 이 책에는 역사적 사건보다 구전하는 신화나 전설뿐만 아니라 입춘탈굿놀이나 영등굿과 같은 세시풍속은 물론 탐라지와 같은 역사서에서 접할 수 없는 민속지적 자료들이 실려 있다.

그의 기록이 구전하는 야사·일화들을 본 대로 들은 대로 적은 것이라면, 이 책을 통하여 우리는 역사의 행간에서 빠져버린 사건들이나 자료가 전무하여 알 수 없었던 제주도 전통굿의 내용들을 기록의 문맥을 통하여 짐작할 수 있게 되며, 그러한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놀라움과 함께 미지의 수수께끼가 너무 쉽게 풀리는 듯한 두려움과 야릇한 의구심마저 갖게 만든다. 그러한 느낌은 신비주의의 껍질을 벗기는 쾌감 같은 것이다. 문화의 해석은 꿈의 해석과 같다.

아득한 고대 원초적인 시간에 이루어진 신들의 이야기는 인간의 상상력이 창조해낸 신화이기도 하지만, 사냥을 하고 농사를 지으며, 신을 받들어 모시며 살아온 우리 문화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몇 줄 안 되는 기록은 지금까지 알 수 없었던 문화의 뿌리를 캘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기도 한다. 문화의 해석은 상상력과 논리적 근거를 동시에 제공할 때 설득력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심재의 『해상일사』의 몇 가지 기록들은 탐라국 시대의 전통굿의 일면을 미루어 알 수 있게 함으로써 우리들에게 놀라운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 하나가 고대인이 하늘에 제사하던 굿으로써 부여의 영고(迎鼓)나 고구려의 동맹(東盟)과 같이 남녀군취(男女群聚) 가무오신(歌舞娛神)하던, 즉 남녀가 모여와 춤과 노래로써 신을 즐겁게 하던 '고부락 존상'이라는 굿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기록에 의하면, " 광양당은 제주 읍성 남쪽 3리 밖의 모흥혈 부근에 있다. 이곳은 삼신인(三神人)이 '놀던 곳'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심방들이 모여와 봄과 가을에 징과 북을 치며 '놀이굿'을 하였다. 이를 '고부락 존상(高夫樂尊像)'이라 하는데, 고부락의 '락(樂)'은 '량[梁]'의 잘못 전해진 음이다."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삼을나(三乙那) 신화에 나오는 고부량 삼신인이 놀던(娛樂之所) 광양당과 삼신인이 솟아난 모흥혈은 어떤 곳일까. 삼신인이 놀던 곳에 무격배가 모여서 악기를 두드리며 하던 놀이굿(娛神)이 '고부량 존상'이고, 이 굿 이름 '존상'이 '전상'으로 변했다면, '사냥을 하던 삼신인 고부량의 전상굿'으로 풀이될 수 있다. 고부량 삼신인은 수렵신이기 때문에 삼신인이 하던 놀이는 '사냥놀이' 즉 '산신놀이'가 아닐까. 삼신인이 놀던 광양당과 신라의 계림처럼 숲으로 에워싸인 모흥혈은 제주 읍성이라는 속계(俗界)와 하늘의 중간에 있는 성스러운 곳, 우주목(우주목 ; 당나무)이 있는, 단군신화의 '신시(神市)'와 같은 곳이 아닐까. 사냥을 하던 고부량 삼신인이 사냥의 수확물을 신에게 희생으로 바치며 굿을 하던 것이 '산신놀이'이며, 이 굿 터가 광양당이라는 것, 후대의 심방들이 이러한 신들의 행위를 찬양하며 벌이는 굿놀이가 '영고'나 '동맹'과 같이 제주도에서는 봄·가을에 하던 '고부량 전상'이라 한다면, 이 굿놀이가 조선시대에 와서 봄·가을에 하는 삼성대제라는 형식으로 변한 것이며, 옛날 식으로 한다면 당굿에서 하는 '사냥놀이'나 백정굿으로서 '거무영청 대전상' 아니면 오늘날 직업의 신을 위한 '삼공맞이' 또는 '전상놀이'도 고대의 굿이 변형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와 같이 문화는 빙산의 심연처럼 넓고 깊다. 그러므로 문화의 시대를 넓혀 나가기 위해 우리의 역사, 우리의 문화의 넓고 깊은 어둠의 심연을 꿈을 분석하듯 풀어나가는 것이 현대인들에게 주어진 과제라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역사의 기록을 통하여 탐라국에도 고구려의 동맹이나 부여의 영고와 같은 고대의 굿이 있었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문무병·제주교육박물관 운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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