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주 사회부 부국장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21분. 대한민국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의 영광을 안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을 당한 순간이다. 촛불을 들고 대통령 탄핵을 원했던 국민과 태극기를 들고 탄핵 기각의 목소리를 높였던 국민 모두에게 안타까운 국가적 아픔이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한 10일은 물론 11일 토요일에도 시민혁명을 이끌어낸 촛불과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태극기 물결이 다시 광장을 채웠다. 탄핵이 인용됐지만 대한민국은 국론이 분열되고 혼란을 겪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이 주는 교훈은 명백하다. 선출된 현직 대통령이라도 결코 법 위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 근거이고, 국민은 그러한 헌법을 만들어내는 힘의 원천이라는 사실이다. 국민이 투표를 통해 대통령에게 살아 있는 권력을 부여했듯이 국민은 헌법재판소에도 대통령을 민주적으로 퇴장시킬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비선에 의지한 국가권력 사유화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은 최순실 국정농단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으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소통의 부재에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소통부재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나 조윤선 전 정무수석의 청문회 당시 증언을 통해 입증됐다. 비서실장이 대통령과 1주일간 한 차례도 독대를 못한 적도 있다. 조 전 수석은 정무수석 재임중 독대를 한 차례도 못했다고 증언했다. 비서실장과 정무수석 조차 독대를 못하는 대신 박 전 대통령은 문고리 3인방을 통해 자신의 의중을 가장 잘 안다는 최순실씨에게 의존했다. 공식 직책도 없는 최씨에게 권력을 위임한 것이나 다름없는 국가권력의 사유화를 가져오며 국정을 농단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박 전 대통령의 소통부재는 재임기간중 여러차례 언론과 국민, 야당에 의해 지적받아왔다. 대학교수들이 매년 12월 한국사회를 규정하며 꼽은 사자성어만 보더라도 국민 뜻과 동떨어진 박 전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를 엿볼 수 있다. 취임 첫해인 2013년은 도행역시(倒行逆施)다. 잘못된 길을 고집하거나 시대착오적으로 나쁜 일을 하는,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뜻이다. 세월호 비극이 있었던 2014년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로 부른다’는 뜻의 지록위마(指鹿爲馬)다. 2015년은 혼용무도(昏庸無道)가 꼽혔다. ‘나라 상황이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는 뜻이다. 지난해는 ‘강물(백성)이 화가 나면 배(임금)를 뒤집을 수 있다’는 의미의 ‘군주민수(君舟民水)’가 선정됐다. 국정농단 의혹으로 국회의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이끌어낸 상황과 의미가 상통한다.

양쪽 귀 열고 쓴 소리도 들어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오는 5월 9일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유력시 되고 있다. 여당이 없는 상황에서 각 정당마다 후보자 선출을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현재까지 후보로 나서겠다고 표명한 사람만 10명을 훌쩍 넘는다. 국가지도자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국민이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헤아리기 위한 소통 노력이 필요하다. 양쪽 귀를 모두 열어 쓴소리 마저도 두루 들어야 한다. 듣기 좋은 말만 듣고 자신들 쪽 진영 논리에 매몰돼서는 국론분열과 혼란을 잠재우고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내년 상반기에는 지방선거가 열린다. 행정체제 개편이 어떻게 결론 날지 모르나 아직까지 제주지역에서는 도지사와 교육감, 도의원을 뽑는 선거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국민에 의해 선출되는 국가지도자라면 도지사나 교육감, 도의원도 도민에 의해 선출되는 지역의 정치지도자다. 이들도 도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도민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시장·군수가 없는 제주특별자치도의 도지사의 역할은 막중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실패는 대선 과정에서의 검증의 실패였다는 반성도 있다. 도민들은 오는 5월 대통령 선거와 내년 지방선거에서 후보들의 능력과 자질을 엄정하고 면밀히 살펴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 결국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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