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원 제주대학교 사학과 교수·논설위원

지난 겨울방학 동안 필자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중국 국민당 국제관계를 연구하는 아내와 함께 미국 스탠퍼드대학(Stanford University) 후버연구소(The Hoover Institution)의 초청을 받아 방문학자 자격으로 중화민국의 총통을 지낸 장개석의 일기자료를 직접 열람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았다.

장개석은 1917년에서 1972년까지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국내·외의 주요 정세 분석과 정치적 판단 그리고 정무적·사적 행위에 대해 꼼꼼히 기록을 남겼고 이 기록이 바로 '일기(日記)'의 형태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전쟁 등으로 못쓴 기간엔 나중에 몰아서라도 기록을 남겼다. 이 기록들은 2004년 장개석의 손자며느리가 스탠포드대학 후버연구소에 기증했다. 중국대륙에는 1924년분만 남경에 전해지고 있으며 대만에도 복사본이 존재한다. 

스탠퍼드대학을 방문하는 연구자들에게 후버연구소 아카이브에 보관돼 있는 그의 일기가 공개되기는 하지만 일체의 복사와 사진촬영 등은 금지돼 있다. 따라서 허가받은 연구자들은 한 번에 한 달 분량의 자료를 신청해 지정된 장소에서 필요부분을 열람한다. 연구에 필요한 내용이 있을 시에는 지정된 메모지와 연필만을 사용한 필사(筆寫)만 허용된다. 아카이브 출입 시에는 일체의 개인물품을 휴대할 수 없고 나올 때 역시 직접 필사한 메모지 한장 한장을 검토받아야 하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이 기록들을 열람할 수 있다. 

일기는 붓으로 흘려 썼고 페이지 사이마다 참고자료로 각종 신문자료들이 스크랩돼 있다. 붓으로 흘려서 기록됐기 때문에 내용을 해독하는 것 또한 지난(至難)하기만 했다. 연구소를 방문한 중화권의 학자들과 자료에 대해 의견을 나눠 보니 그들조차도 해독을 못하는 부분이 많다고 했다.

장개석 총통은 매일 오전일과, 오후일과, 저녁일과를 나눠 정리했고, 일주일과 한달 단위로 반성해야할 점과 주요 계획들을 항목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자료를 보면서 그가 쓴 내용을 보니 마치 "청조의 옹정제(雍正帝)와 같은 통치와 기록정리 강박관념이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종 이러이러한 상황이니 "하나님이 보우하사"라는 류의 기도까지 일기에 기록해둬 불리한 국제정세 속에서 국가를 수호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고독한 통치자의 절박한 심정까지 느낄 수 있었다. 

일기에는 당시의 국제정세와 국내정치상황에 대한 판단과 감상, 당시 정세를 둘러싼 미국, 소련을 비롯해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의 강국들, 일본, 한국, 필리핀 등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상황판단도 꼼꼼히 정리해 기록해 뒀는데, 특히 인상에 남는 것은 1950년 초의 일기에 소련이 어떠한 형태로든 한국을 침습해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정세판단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더하여 대만 및 중국대륙의 정치 및 행정 군사 등 각 분야에 대한 인사문제, 간부회의, 조직구성, 연합작전훈련, 법률과 제도에 대한 점검과 검토, 그리고 매 사안에 대한 고민의 흔적들이 일기장에 빼곡히 담겨져 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내용은 밤에 안개가 심해 해군 군함의 경계근무가 어려울 것이라는 국방상황이 근심이 돼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새벽 4시부터 깨어 상황을 살펴봤다는 사실과 지방에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해 그 상황을 보고 받자 재난을 당한 현지인들을 걱정하면서 신속히 책임자에게 후속대책을 지시함과 아울러, 다음날 직접 재난지역으로 이동해 구호상황들을 꼼꼼히 점검해 일기에 기록한 부분이었다.

탄핵된 대통령을 보좌하던 모 수석은 업무수첩에 많은 기록을 남겼다. 이 기록들은 증거자료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향후 역사학자들에게는 중요한 사료로 남겨지게 될 것이다. 수첩을 애용해서 '수첩공주'라고까지 불렸던 그녀는 과연 어떠한 기록을 남겼는지 역사학자로서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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