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은주 ㈔제주올레 사무국장·논설위원

"중국 사람들 안 와서 제주도가 조용해졌다며?" 

요즘 육지 지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간혹 "중국인이 싹 빠져 제주도 괜찮냐"며 걱정하는 이도 있지만, "이제야 제주도와 올레길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됐다"는 사람이 더 많다. 지난 2~3년 동안 발길을 끊었던 올레꾼 가운데 다시 올레길을 찾는 이들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제주올레 여행자센터에서 만난 육지 올레꾼들은 "지난 몇 년 동안 항공권을 구하기도 어렵고, 시끄럽고 번잡해 제주도를 찾을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이제야 제주도다움을 느낄 수 있게 됐다"며 좋아했다. 

중국인 저가 패키지 관광이 제주를 망치고 있다며 중국인 전담여행사 삼진아웃제 등 저가 패키지를 없애기 위한 정책들을 정부에서 내놓은 것이 불과 한 달 전이다. 그런데 이제는 "중국인이 오지 않아 제주 관광업계가 다 죽어간다"고 요란하다. '사드 배치'라는 반갑지 않은 원인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최근 상황은 오히려 그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제주 관광의 체질을 개선하고 해외 관광객 다각화를 모색할 수 있는 기회가 될지 모른다. 중국인 단체를 타깃으로 비즈니스를 하던 관광업계는 타격이 크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여기저기 손 벌리고 아우성 칠 것이 아니라 중국인이 떠난 자리를 다른 여행자로 채워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난 달, 규슈올레 새로운 코스를 개장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다. 규슈올레는 지난 5년 동안 꾸준히 성장해 일본 내에 수많은 올레꾼과 '제주 마니아'를 길러냈다. 개장 초기에는 50명도 채 안 되는 사람들이 모여 처음 열리는 길을 걸었지만 이제는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규슈올레 새 코스 개장식에 와서 걷는다. 규슈올레 전 코스를 완주한 일본 올레꾼도 100명이 넘는다. 이번 개장에서는 올레의 상징인 '간세(제주 조랑을 본 따 만든 제주올레 로고이자 길 표식)'로 치장한 모자와 옷을 입고 와서 걷는 일본 여성들을 만났는가 하면 "제주올레가 규슈에 올레길을 내줘 새로운 여행 상품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며 고마워하는 일본 여행사 직원도 만났다. 이들은 하나같이 "다음에는 꼭 제주올레를 걸으러 가겠다"고 입을 모았다. 

5년 전 규슈올레를 내기로 했다는 뉴스가 나가자마자 제주올레 사무국에는 "일본 사람들한테 왜 올레를 주느냐"며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그래도 "일본에 올레길을 내면 그 길을 걸어본 일본인이 원조인 제주올레를 걸으러 오는 날이 오겠지" 하며 규슈올레를 내기 시작했다. 반대로 올레를 수입한 규슈관광추진기구 사무실에는 "왜 한국의 브랜드를 수입하느냐"는 일본인들의 항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그래도 규슈관광추진기구는 올레길을 통해 한국 사람들이 규슈를 더 자주 많이 찾을 것이라는 꿈을 꾸며 제주올레와 손잡고 규슈올레를 냈다. 5년이 지난 지금 두 기관 모두 작은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규슈올레는 한국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며 일본 전역에서 가장 성공한 프로젝트로 평가받는다. 제주올레는 규슈올레를 통해 제주올레를 알리고 제주올레를 찾는 일본인 관광객을 늘려가고 있다. 제주올레나 규슈관광추진기구 둘 다 반대에 부딪혔을 때 주저앉았다면 오늘의 열매는 없다. 

제주 행정이나 제주 관광업계도 마찬가지다. 중국인이 빠져 나간 것에 절망만 한다면 시간이 흘러도 작은 열매조차 손에 쥐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이 기회에 제주를 찾는 여행자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그들이 제주를 더 잘 즐기게 하기 위해 제주 여행 시스템과 서비스를 개선하고 보완해야 할 것이다. 불친절한 대중교통, 지나치게 비싼 관광지 물가, 외국인도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어 안내 시스템 등 바꿔야 할 것이 너무 많다.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 개인 여행자'가 와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제주 구석구석을 장기간 여행하면서도 전혀 불편하지 않도록 한다면 중국인이 빠져 나간 자리는 더 다양하고 많은 여행객들이 메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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