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편집부장 대우

지난 2014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올해의 인물로 '에볼라 전사들(The ebola fighters)'을 선정했다. 그들은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에볼라 바이러스 창궐지역인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활약한 국경없는 의사회 같은 단체 소속의 의료진들이다. 타임은 "에볼라 전사들이 자신의 생명을 걸고 적극적으로 나서 세계적으로 대응 체계를 강화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이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보통 유명 정치인들이 등장했던 올해의 인물에 에볼라 의료진이 선정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위대한 업적에는 숨은 영웅들이 있기 마련이다. 1960년대 미국과 소련은 우주개발을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에는 이 거대 프로젝트에서 활약한 흑인 여성 과학자들이 있었다.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는 이들의 이야기다.

'히든 피겨스'는 숨은 숫자들 혹은 숨은 인물들이란 의미다. 흑인 대통령까지 나온 요즘의 미국이라면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1960년대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유색인종들은 화장실, 버스, 도서관, 학교 등 백인과 다른 공간을 사용해야 했다. 유리천장 보다 더한 장애물속에서도 그녀들은 우주선의 궤도를 척척 계산해내고, 거대한 IBM(컴퓨터)을 가동시키고, 나사 첫 여성 엔지니어로 이름을 올린다. "남자들만 지구를 돌라는 규정은 없어요" 천재적인 두뇌와 열정으로 무장한 그녀들은 당당하고 긍정적이다. 이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우주개발이란 목표 아래 모든 이들이 협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지난 4개월간 대통령의 탄핵을 이끈 대규모 촛불집회 뒤에는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수고한 환경미화원들과 화장실을 개방해 준 시민들이 있었다. 3년만에 세월호가 인양되기까지 유족들과 고생과 슬픔을 같이 한 동거차도 주민들이 있었다. 참사 이후 진도 앞바다를 누비며 실종자를 수색한 잠수사들이 있었다. 역사는 뛰어난 한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름이 드러나지 않은 숨은 조력자들이 더 많을 것이다. 함께 오르지 않으면 정상에 오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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