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차상 제주한라대 교수, 논설위원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헤어롤을 머리에 달고 출근하는 해프닝이 외신에 비중있게 소개되면서 화제가 돼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박물관에 가면 수많은 유물을 볼 수 있다. 그러한 유물들을 누가 착용했느냐에 따라 또 어느 상황에 사용했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헤어롤은 흔한 물건이다. 또 '헤어롤'을 머리에 달고 출근한 건 어쩌면 실수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실수가 오히려 많은 국민들에게 감동을 줬고, 외신들도 높게 평가하면서 그 의미가 새롭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래서 어떤 방식이건 그 의미를 되새기자는 취지에서 헤어롤을 영구보관하는 방안이 헌법재판소에서 거론되고 있다. 

미국 AP통신은 핑크색 헤어롤 두 개를 얹은 이 권한대행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함께 "한국인 여성 재판관이 자기 일에 헌신하는 여성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면서 "이 권한대행의 모습은 아시아권 국가에서 '일하는 여성'의 모습을 상기하는 순간이 됐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화제의 주인공인 이정미 헌법재판관은 26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87년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됐다. 

그리고 서울지방법원, 서울가정법원, 서울고등법원 판사, 2011년 대전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재직 중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의 지명으로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됐다. 

3월 10일 오전 11시. 역사적인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이정미 재판관의 단호한 선고가 있었다.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권한을 행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최서원(최순실)의 국정개입 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의혹이 제기될 때 마다 부인하고 오히려 의혹제기를 비난하였습니다. 피청구인(대통령)의 헌법과 법률 위배 행위는 재임기간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뤄졌고, 국회와 언론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실을 은폐하고 관련자를 단속해 왔습니다. 이러한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대의민주제의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한 것입니다. 한편 피청구인의 대국민 담화에서 진상규명에 협조하겠다고 했으나 검찰, 특별검사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 압수 수색도 거부하였습니다. 결국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고 봐야 합니다. 피청구인의 법위배 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 중대함으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이다.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주문 선고한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3월 13일 퇴임한 이 전 대법관은 30년 동안 법원 실무에 능통하며 늘 겸손한 자세와 세심한 배려로 동료 법관과 법원 직원들한테서 두루 신망을 얻었다. 

퇴임사를 보면 한국의 구조적 문제와 사회 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통치구조의 위기상황과 사회갈등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그리고 인권 보장이라는 헌법의 가치를 공고화하는 과정에서 겪는 진통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오늘은 이 진통의 아픔이 클지라도 우리는 헌법과 법치를 통해 더 성숙한 민주국가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법의 도리는 처음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나중에는 오래도록 이롭다"(한비자)는 중국의 고전이 주는 지혜는 오늘도 유효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민주주의, 그 요체는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데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이번 진통을 통해 우리 사회가 보다 자유롭고 평등하며, 보다 성숙하게 거듭나리라고 확신합니다. 이제는 분열과 반목을 떨쳐내고 사랑과 포용으로 서로를 껴안고 화합하고 상생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러한 법치 인식과 민주주의 신뢰가 우리 일반인도 함께 공유해야 할 가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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