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열 경남대학교 교수·논설위원

유력 대선 주자가 고등학교 서열화 완전 해소를 교육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래서 외국어고등학교, 국제고등학교, 자사고를 단계적으로 일반 고등학교로 전환하고 일반고 전성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고등학교 서열화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은 이미 30여년 전에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도입됐다.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은 세칭 일류고등학교의 폐지와 교육여건의 개선을 통한 '고등학교 교육여건의 균등화' 및 연합고사에 의한 학생의 선발과 '무작위 추첨 배정'이라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해 1974년 서울과 부산 지역에서부터 실시되기 시작했다. 이후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은 부분적인 보완을 거치면서도 기본적인 골격을 크게 변하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적용지역은 확대와 축소의 부침의 과정을 밟아왔다.  

사실 고등학교 진학단계에서의 경쟁의 완화를 통한 중3병의 치유와 중학교 교육의 정상화, 고등학교 교육여건의 상향적 균등화, 고등학교 입시준비 해소를 통한 국민의 사교육비 경감 등을  중요한 목표로 삼았던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은 상당한 정도로 정책목표를 달성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은 다른 한편으로 예기치 않았던 새로운 문제점들을 낳았다. 이질집단의 구성으로 인한 학습지도의 곤란 및 학력의 저하, 학생·학부모의 학교선택권의 제한, 고등학교 교육의 획일화, 사학의 독자성 상실 등이 바로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들이다.

정부는 이런 문제점에 대해 부분적인 정책변화를 통해 대응해왔다. 우선, 학급(학교)내 학생들의 커진 학력편차를 극복하기 위해 초기에는 능력별 반편성, 나중에는 수준별 이동 수업 방안 등을 제시했다. 다음으로 학교선택권의 제한이라는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선 복수 지원 후 추첨(배정)'의 방식을 도입했다. 

또한, 교육프로그램의 획일화로 인해 학생들의 적성과 소질이 제대로 살려지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특별한 재능을 가진 학생들을 위한 과학고등학교, 외국어고등학교, 예술고등학교, 체육고등학교 등을 설립하거나 특별한 배려를 요하는 학생들을 위한 대안고등학교 등을 법령에 의해 인정받는 학교로 인가하고 있다. 그리고 일반 고등학교 중에 특정 교과 중점학교를 지정함으로써 교육의 획일화라는 비판에 대응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학의  독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문제점은 2000년 초반에 자사고 제도를 도입해 해결하려고 했다.  

이러한 정책들이 고등학교 교육의 다양성을 증대하는 등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효과를 어느 정도 거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고등학교 간 서열화를 낳았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예컨대, 학생들의 다양한 잠재적 능력을 존중한다는 외국어고등학교나 사학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자사고 등은 일반 고등학교보다 훨씬 대학진학에 유리한 기회를 가지면서 고등학교 간 서열화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가정배경의 영향을 크게 받고 교육은 더 이상 기회의 사다리로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력대선 주자가 고등학교 서열화 해소를 공약으로 내세우는 것은 바로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그동안의 정책들이 다양성을 명분으로 새로운 일류고등학교를 등장하게 했다는 문제의식에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유력 대선주자가 주장하지 않더라도 당연히 고등학교 간에는 우열이 존재해서는 안된다. 어느 고등학교에 다니든지 간에 누구나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자신이 다니는 학교 때문에 차별적인 교육을 받아서는 안된다. 좋은 교육을 균등하게 받을 수 있는 권리는 기본적 인권이고 헌법적 권리다. 그런데 어떤 고등학교 제도가 이런 권리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지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데 서열화 해소 정책의 어려움이 있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