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대림 서귀포의료원장

바야흐로 사월이다. 어느 시인은 사월이 잔인한 달이라 했지만, 그동안 꽃샘추위에 움츠렸던 봄꽃들이 다퉈 피어나는 바쁜 시절이 됐다. 쉼없이 부지런하게 자신의 역할을 찾아서 빠짐없이 실행하는 계절을 보면 자연의 능력이란 대단하고 감동적이라고까지 여겨진다. 추운 계절이 지나고 나면 만물이 생동하는 계절로 이어지게 된다.

포정해우는 장자의 「양생주편(養生主篇)」에 나온다. 고대의 이름난 요리사인 포정은 소를 해체할 때 거의 칼이 마모되지 않게 뼈와 살을 발라낸다는 내용이다. 이런 놀라운 기술로 단 한 번도 칼이 살이나 뼈와 부딪히는 실수를 한 적도 없었고 19년 동안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지만 칼날은 방금 숫돌에 간 것과 같았다. 뼈와 뼈 사이, 근육과 뼈 사이, 근육과 근육 사이 등에는 아주 미묘한 공간이 있어서 정육용 칼을 그 공간에 쳐 넣으면 갈라지듯 소 한 마리가 해체된다는 이상적인 이야기다. 

필자는 그동안 많은 외과 수술을 하면서 장자의 포정처럼 수술을 잘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봤다. 거의 출혈도 없었을 것이고 회복도 순조롭게 진행됐을 것이고 어떤 의료과실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초보에서 숙련된 외과의로 탄생하기까지 여러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짧지 않은 수업 기간을 통해 그리고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수련의 과정을 거쳐야 마침내 전문의라는 마지막 단계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그에 상응하는 많은 시간과 노력, 그와 더불어 많은 시행착오가 동반돼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렇듯 치러야할 대가가 적지 않다.

사회적인 현상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두 개인 또는 두 집단 간에 이해가 상충할 때 양쪽을 모두 만족시킨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포정해우처럼 이상적인 것이 돼버린다. 상황에 따라서는 한쪽이 손해보고 다른 쪽이 이기는 경우도 가끔 발생하기는 하지만 이 또한 불합리한 협상인 것이다. 협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상황을 악용한 협박일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정육용 칼이 손상되지 않거나 소가 아무런 손실 없이 깔끔하게 해체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결국 양쪽 다 어느 정도의 손실을 예상하고 받아들일 여지가 있어야 대화도 되고 협상도 이뤄지는 것이다. 한쪽은 손해를 전혀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대화나 협상은 의미 없는 일이고, 단지 정치적인 구호에 불과하다. 

요즘 세상은 본인이 잘못을 하고도 인정하지 않는다거나 모른다고 하는 것이 대세인 것 같다. 본질을 감추기 위해 저열한 방법으로 언론에 있지 않는 사실을 민원인양 보내서 관심을 유도하기도 한다. 

소위 '가짜뉴스'도 그런 부류라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미봉책으로 호도될 수 있겠지만 진실은 언제나 존재하며 시간이 흐르면 인양되는 세월호처럼 언젠가는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게 된다. 협상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 한다거나 사실을 호도하는 등의 비합리적인 현상은 우리 사회가 앞으로 개선해 나가야할 과제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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